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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유대열 (11) 두고 온 가족 생각에 하염없이 북한 땅 바라봐

베이징행 기차에서 멀어지는 고향 보며 부모·형제 언제쯤 다시 만날까 생각

유대열 목사가 1998년 1월 한국복음주의협회 조찬기도회에 초청돼 간증하고 있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들어서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속히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시내로 들어가 숨어야 했다. 그렇게 중국 지안시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중국 옷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유학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누가 봐도 중국 사람과 비슷한 차림새였다. 그리곤 기차역으로 갔다. 열차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1시쯤 베이징으로 출발하는 열차가 있었다. 당시 내겐 비상금으로 미화 100달러와 중국 돈 100위안이 있었다. 북한을 떠나기 전 중국에서 유학을 같이한 동생을 찾아갔을 때 그가 건네준 피 같은 돈이었다. 표를 산 뒤 열차에 올랐다. 기차가 출발하자 승강대로 나가 점점 멀어지는 압록강과 그 너머 북한 땅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언제 다시 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형님 동생들을 만날 날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올랐다.

30대로 보이는 여성 검표원이 내게 다가왔다. 내 열차표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가슴이 덜컹했다. 혹시 공안에게 데려가면 큰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치가 보이면 돈을 줘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검표원은 예상외로 상냥했다. “베이징까지 가려면 다른 열차표를 사야 한다”고 했다. 표를 잘못 산 것이었다. 나는 “몰라서 그랬다”면서 “지금이라도 방법을 알려주면 다시 사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열차원이 “괜찮다. 누군가 다시 이 문제를 갖고 물어보면 검표원이 이미 검열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중국도 북한과 같이 열차 공안원들의 검색이 심한데도 나는 무사히 베이징까지 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열차원 아가씨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려고 붙여주신 도움의 손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에서 벗어나 있는 게 있겠는가.

베이징역에 내린 난 베이징어언대학교로 향했다. 함께 유학했던 외국 친구들에게 당시 베이징 상황을 알아보면서 소개받은 일본인 여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만 알 뿐이었지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던 내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었다. 학교 교무처에서 물어봤지만 일본 이름밖에 모르는 터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근처 기숙사를 찾았다. 그의 이름을 물으며 수소문하던 내게 기숙사 관리원이 4층의 어느 방으로 가보라고 일러줬다.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그 일본인 학생이 문을 열어줬다. 그는 탈북하며 고생을 해 피골이 맞닿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유학 이야기를 꺼내며 설명하니 마침내 날 알아봤다.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칭 찐, 칭 찐(어서 들어오세요)”하며 나를 반겨줬다. 마주 앉은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얼굴만 한참 바라봤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어디 갈 곳이 없을 테니 일단 내 방에서 며칠 쉬세요”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부터 난 그의 방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그는 다른 친구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가 말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도울 길이 전혀 없네요. 그저 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앞이 막막해진 내게 그는 봉투 하나를 건넸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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