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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다윗 세우신 하나님… 두려움 없는 책임감을 보셨다

<18> 부흥은 어떻게 시작되나

충남 당진 수청로 산중에 위치한 당진동일교회에 2013년 1월 눈이 내린 모습. 교회에 가려면 농로를 따라 1.5㎞를 들어가야 한다. 당진동일교회 제공

누구나 부흥을 목말라한다. 특히 목사님들에겐 간절한 꿈일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왜 그리 힘들까. 목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인데 왜 실패하는 경우가 생길까. 평신도 때부터 궁금했다.

‘만일 내가 목회할 때 부흥이 없다면 어떻게 하지’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마다 가슴을 졸이게 한 말씀이 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2)

누구는 폐하시고 누구는 세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었다. 다윗은 도대체 왜 그렇게 하나님이 적극 지원하신 것인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했던 것은 어떤 부분이란 말인가.

다윗을 찾아 성경을 더듬거리다가 감동이 돼서 사무엘 상하를 4년 반 동안 주일예배 때 연속으로 강해했다. 그렇게 다윗을 사모하게 됐다. 이때가 교회가 가장 폭발적으로 부흥했던 시기였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주일이 기다려지던 시절이다.

어리석고 미천한 신출내기 목사였지만 틈만 나면 성경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다윗의 삶을 따라가자 그 은혜 속에 푹 빠졌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신 이유 몇 가지를 닮고 싶었다. 평생 그 마음을 변치 않게 지키고 싶었다.

다윗의 모습 속에는 책임감, 즉 맡은 자의 확신이 있었다. 사자나 곰에게 끌려가는 새끼 양을 지켜 내는 그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맡기신 그 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드는 다윗, 그에게 힘을 주셔서 그 무시무시한 사자와 곰을 쳐 죽이고 양을 살려냈다는 다윗, 이것이 맡은 자의 정신이었다. 한 영혼을 품고 씨름하는 그 마음이었다.

종종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스스로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 말씀 앞에 우연히 깨달음을 주셨다. 사람은 전혀 존귀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 3:11~18)

사람이 이런 존재였다. 칼뱅의 정의처럼 전적 타락이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어떻게 천하보다 귀한 존재가 됐다는 말인가. 그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행 20:28)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이게 문제였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온 천하가 다 하나님 것인데 누구에게 값을 지불하고 사람을 사 오신단 말인가!’ 가슴이 벌렁거리는 깨달음 속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죗값을 대신해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 그 피 값으로 살려낸 사람, 그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와 있다는 말씀이었다.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10:42)라는 냉수 한 그릇에 담긴 그 비밀, 예수님의 피 값을 알고 대하는 그 마음이 목사의 마음에 살아날 때 하나님은 부흥의 문을 열어 영혼을 맡겨 주신다.

이 말씀은 나를 매우 고단하게 했다. 눈이 무척 내리던 해였다. 밤새 내리고 낮에도 내리고 또 내리는 눈을 치우고 쓸어도 끝이 없었다. 도시가 아닌 시골이다 보니 교회에서 자동찻길까지는 1.5㎞ 정도 된다. 폭이 2~4m인 시멘트 농로이다 보니 자칫하면 자동차가 논으로 처박혔다. 좌우로 난 길을 합치면 3㎞쯤 된다.

낮에는 그렇다 치고 새벽길이 문제였다. ‘성도님들이 오는 길에 눈이 쌓여있으면 어떻게 이 좁은 길을 올 수 있겠는가. 눈길이란 생각에 아예 새벽기도에 오는 걸 엄두도 내지 못하지 않을까.’ 그래서 빗자루를 들고 길로 나섰다.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면 금방 빙판이 되기 때문에 곧바로 눈을 쓸어내야 했다.

제설 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다. 쓸고 치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을 쓸고 있을 때 저 멀리 자동차가 들어왔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급기야 손바닥에 잡힌 물집이 터지더니 껍질이 훌렁 밀려 나가 버렸다. 벌겋게 속살이 올라오면서 피가 흐르고 얼음을 깨던 괭이자루에 손이 붙어버렸다. 어찌나 쓰라리던지 참기 어려웠다.

땀에 젖은 옷을 후다닥 벗어놓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새벽 제단에 서서 찬송을 불렀다. 그때 성도님들의 얼굴, 그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고맙고 감사했다. 귀하고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어찌 눈물 없이 기도가 되겠는가. 그렇게 눈물의 새벽기도 시간을 보냈다. 40일 넘게 눈을 치운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다.

한 영혼을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울고 기도하게 하신 찬송이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그렇다. 목회자가 이 마음으로만 살아간다면 후회도 없을 것이요, 부흥도 이뤄 주실 것이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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