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10주기를 맞아 추모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한·일 관계, 남북 관계, 경제 상황 등 우리가 처한 여러 현실이 자꾸 그를 떠올리게 한다. 강산이 변하고 남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추구했던 원칙과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며 되살려야 할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일본 의회에서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용기가 필요하며,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일본에 과거를 회피하지 말라는 주문을, 한국에는 미래를 보라는 당부를 하면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양국이 이를 실천하지 못해 경제전쟁으로 치달은 현 상황의 해법은 결국 20년 전 그가 천명한 원칙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8일 추도식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중심에 놓고 대외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이를 조화와 비례의 지혜라고 평가했다.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동력도 한·미 동맹이라는 지렛대에서 나왔다. 뜨거운 가슴을 앞세우기보다 동북아 정세를 아울러 고려했던 그의 접근법을 북한도 납득했고 인정했다. 북한은 지금 한국 정부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화(弔花)를 보냈다. 경제에서는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을 상용화해 IT 강국의 기반을 닦았고, 동시에 기초생활보장제를 비롯한 복지의 기틀을 다졌다. 내치와 외치를 관통하는 그의 국정철학은 ‘균형’이란 말로 요약돼야 한다. 과거와 미래의 균형, 민족과 동맹의 균형,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했던 그가 이 시점에 자꾸 생각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가는 길에 어딘가 균형이 어긋나 있다는 방증이 된다. 추모에 머물지 말고 그의 지혜를 되살려 흐트러진 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10주기 추도식을 빌려 정치권의 여야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DJ를 말했지만 서로 다른 DJ를 기렸다. 국회의장은 ‘협치의 달인’이라는 그를 회고하며 “지금의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다”고 개탄했다. 그가 강조했던 ‘상인의 현실감각’을 이어받은 정치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빈자리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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