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다라치네’ 회원들이 생활 속 시료에 대해 직접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모습. 다라치네 영상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いわき)시에 위치한 방사능 시민측정실 ‘다라치네(たらちね)’에는 인근에 거주하는 엄마들이 보내는 시료들이 거의 매일 도착한다. 마트에서 구입한 후쿠시마산 사과를 곱게 채 썰어 플라스틱 통에 보내거나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 모래를 채취해 비닐봉지에 담아 가는 식이다. 직접 거실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린 뒤 모인 먼지를 보내거나 길거리에서 채취한 이끼를 측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원전 사고 이후 피폭 우려에 주변 환경이 안전한지를 판단하려고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에 방사능 측정을 요청해오는 것이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이후 8년여가 지났지만 자생적 방사능 감시 조직들의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직접 장비를 사들고 돌아다니며 측정한 데이터를 공유하는 시민연대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 단체의 활동과 발표 내용들을 보면 “안전하다. 이제는 후쿠시마 방사능 공포를 종식시키고 ‘회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일본 정부 설명에 의문이 든다. 단체 관계자들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방사능 문제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말과는 거리가 있다.

다라치네는 ‘모친’이라는 뜻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엄마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단체가 만들어지자 교토대 테츠지 이마나카 교수 등 전문가들이 직접 장비를 마련해주거나 측정법을 알려주며 도움을 줬다고 한다.

후쿠시마 거주 주민들은 청소기 먼지 등을 모아 다라치네에 방사능 측정을 의뢰한다. 다라치네 영상

다라치네는 매달 후쿠시마산 쌀이나 감자, 고구마, 인삼, 양파, 죽순 등 먹거리뿐 아니라 솔방울, 토양, 바다모래와 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방사능 측정치를 공개하고 있다. 또 생활 속 방사능 오염을 감시하기 위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청소기 먼지나 걸레, 환풍구 등에서도 시료를 채취한다. 다라치네가 매달 공개하는 방사능 측정치 결과 값은 150여개 품목에 달한다. 후쿠시마 후타바군에서 채취한 유자의 경우 세슘이 81.5㏃/㎏(지난 1월), 가와누마군에서 채취한 죽순에선 168㏃/㎏(지난 6월)이 검출됐다.

평범한 엄마들이었던 이들은 왜 흰 가운을 입고 전문 장비를 다루는 방사능 전문가가 됐을까. 일본 정부는 정기적으로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 지하수나 토양 등의 방사능 수치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은 충분한 정보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라치네에서 활동하는 이이다 아유미씨는 18일 국민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공개한 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샘플링(시료채취) 지점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더 세밀하고 상세한 샘플링을 위해 우리가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뿐 아니라 일본 전역의 음식과 토양에 대해 스스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단체도 있다. ‘민나노 데이터사이트’라는 이름의 단체는 일본 31개 시민 방사능 측정실이 참여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조직이다. 개별 측정실이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 제공하는 웹 정보 시스템을 운영한다. 이 단체 역시 일본 정부의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에 시작된 곳이다.

민나노 측은 “일본 정부의 측정이 너무 늦었다. 식품이나 아이들 주변 활동반경에 대한 방사능 오염 여부를 알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측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파악하지 못하는 식품 오염도 존재한다. 정식 유통경로를 통하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는 거의 검사가 되지 않고 있고, 지자체 경계 지역도 그렇다”며 “정부의 식품 관련 규제는 구멍투성이”라고 지적했다. 민나노 데이터가 지난 5월 공개한 방사능 측정치 결과에서 후쿠시마현 소마군 죽순의 경우 65.06㏃/㎏의 세슘이 검출됐다.

‘방사능 지도’를 만드는 일본 NGO단체 ‘세이프캐스트’의 방사능 측정 도구 ‘비가이게(bGeigie) 나노’ 모습. 토미자와 로이 블로그 캡처

자원봉사자들의 측정 결과치로 일본의 ‘방사능지도’를 만들고 있는 NGO 단체 세이프캐스트 역시 “일본 정부가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정보를 수집하며 방사능 전문가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가 방사능에 관해 은폐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애즈비 브라운 세이프캐스트 수석연구원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환경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그 정보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사능은 아직 끝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시간동안 모니터링이 필요한데, 일본 정부가 ‘이제는 안전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점차 정보의 양을 줄여가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고 피폭의 영향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샘플 조사에 의한 단순 수치로 위험도를 평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방사능 오염을 우려하는 자발적 시민 조직들도 단순히 “일본은 위험하다”라는 메시지는 내놓지 않고 있다. 민나노 측은 “시민들이 직접 안전한지, 위험한지 숫자를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단순 수치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운 수석연구원 역시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건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정보의 경우 일반 시민들이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적어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방사능 문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모니터링 됐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의 벗(FOE·Friends of the Earth) 일본지부 후카쿠사 아유미 활동가는 “정부는 위험과 피해를 과소평가하고 재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 피난민들이 후쿠시마로 돌아가도록 장려한다”며 “(시민들의 자발적 감시 활동은) 일본 정부나 일본 정부 편만 드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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