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가명·16)양은 골프채로 때리는 아버지와 폭언하는 새어머니를 피해 2년 전 인천의 한 가출청소년 쉼터에 들어갔다. 가정 내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온 여성 청소년들이 몸담을 수 있는 쉼터였다.

하지만 그곳은 비상식적인 규칙들로 가득했다. 그중 최악은 실내에서 트림하거나 방귀를 뀌면 벌점 1점을 부과했던 것이다. 청소년들은 생리 현상을 화장실에서만 해결해야 했다. 쉼터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됐고, 낮잠도 잘 수 없었다. 벌점이 쌓여 20점이 되면 퇴소 조치가 이뤄졌다. 김양이 통금 시간을 어기고 밤늦게 들어온 어느 날, 쉼터는 규정을 위반했다며 새벽 2시가 넘어 김양을 내쫓았다.

가정과 학교에서 벗어난 위기 청소년을 일정기간 보호하며 자립할 수 있게 지원하는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쉼터가 구체적인 매뉴얼 없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134곳에 설치된 쉼터에는 많게는 청소년 20~3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여러 청소년이 지내는 만큼 어느 정도의 통제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공통적인 운영 기준이 없어 청소년들은 시설장이 일방적으로 세운 규칙에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쉼터는 청소년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제로 내쫓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의 한 쉼터에 거주하던 19살 동갑내기 A군과 B군이 다투자 쉼터 측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이들에게 당장 나갈 것을 요구했다. 폭력을 쓰지 말라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한밤중에 갈 곳 없던 이들은 청소년지원단체에 연락해 겨우 잠자리를 구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게시판에는 쉼터에서 강제퇴소 당했다고 호소하는 글이 적지 않다.

현행 청소년복지지원법 시행령은 ‘청소년복지시설의 장이 시설의 운영 방침과 입소 요령, 이용 수칙 등에 관한 내용을 정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입·퇴소 규정부터 통금 시간 같은 생활 수칙이 쉼터마다 제각각인 이유다. 5~6곳의 쉼터를 경험한 김양은 18일 “대부분 수면과 식사, 외출 등에 관한 규정이 군대처럼 까다로웠다.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위기 청소년을 갑자기 거리로 내모는 것은 여가부의 ‘2019 청소년사업 안내’와도 맞지 않는다. 청소년사업 안내에 따르면 퇴소 시에 이들에게 심층 상담을 통해 향후 자립지원계획을 공유하고, 사후 관리에 힘쓰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쉼터의 구체적인 운영에 관해서는 각 시·군·구에서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쉼터 이용 청소년은 3만2000명이 넘지만, 종사자는 800여명에 불과하다. 쉼터에서 말 잘 듣고 다루기 쉬운 아이만 남기고, 까다로운 아이는 내보내는 ‘크리밍(Creaming)’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쉼터 측이 입·퇴소 등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면서도 “위기 청소년이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결국 정부와 지방자치자단체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의 ‘보호’와 ‘관리’에만 초점을 맞춘 쉼터 체계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한 청소년 활동가는 “지나치게 촘촘한 규칙은 위기 청소년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탈가정·탈학교 청소년들도 편히 쉴 수 있는 자율적인 생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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