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극심한 혼란이 우려된다는 내용이 담긴 영국 정부의 비밀문서가 유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문서 유출이 오는 10월 31일 브렉시트를 무조건 시행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계획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영국 국무조정실이 이달 초 펴낸 브렉시트 관련 비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노랑멧새(yellowhammer)’라는 코드명이 붙은 이 문서는 존슨 총리 취임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비밀취급인가권을 가진 정부 관계자만 열람할 수 있다.

문서에는 국경 통관 지연에 따른 물류 정체와 연료, 신선식품, 의약품 수급 우려 등 노딜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익명의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 문서에 대해 “노딜로 일반 국민이 직면할 상황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평가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큰 합리적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문서에 따르면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간 국경에서 통관·이민 절차가 엄격해지는 ‘하드 보더’ 시행으로 시위와 도로 차단 등 거센 반발이 우려된다. 특히 물류 이동 정체가 수개월 이어질 경우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부의 연료 수급에 악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영불해협을 통한 물류 이동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프랑스 측 통관 절차에 대한 대응준비 부족으로 최장 2.5일까지 통관이 지연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물동량이 40∼60% 수준으로 급감할 수 있다고 이 문서는 예상했다. 영국 내 각 항구도 길게는 3개월까지 ‘심각한 혼란’을 겪은 뒤에야 물동량이 현재의 50∼70%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분석됐다.

문서는 이외에도 신선식품 공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 의약품 수급 지연, 영국과 EU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어업권 분쟁, 물가 상승으로 인한 사회복지 활동 위축 등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시위 대응을 위해 상당한 경찰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슨 정부는 문서에서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의 관계가 어떠한 형태로 변화할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관련 준비에 악영향을 미쳤다”면서 이전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존슨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기정사실화한 강경 행보를 통해 EU와의 재협상을 관철시키려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당은 오는 9월 3일 하원이 재개되면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의원들과 손잡고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할 전망이다. 하지만 불신임안이 통과돼도 존슨 총리는 사퇴 시점에 대한 규정이 없는 점을 들어 즉각 사퇴를 거부할 계획이라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이렇게 되면 10월 31일 이전에 조기 총선을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총리가 총선 날짜를 정하면 25일 전에 의회가 해산되는 규정에 따라 노딜 브렉시트를 막을 의회의 수단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존슨 총리는 10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한 후 11월 1일 조기 총선을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짜리 노딜 브렉시트를 단행한 후 국민에게 다시 선택받겠다는 승부수인 셈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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