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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유대열 (13) 요한복음에서 ‘희망’ 찾으려 성경 펼쳐

날 도와준 누님 제안 무시하지 못해 성경 읽었지만 어렵고 이해할수 없어…누님 도움 받아 성경공부 하기로

유대열 목사(왼쪽 두번째)가 1999년 9월 송파제일교회를 방문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교회 대표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 유 목사는 통역사로 봉사했다.

니시나 도모코 누님이 일러준 대로 요한복음을 펼쳤다. 내 평생 그렇게 빨리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하는데 그 희망이 무얼까’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고 이해가 안 됐다. 누님은 희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희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었다. 그리고 누님께 “여기 책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말씀은 하지 마시라. 나는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믿었고 그 신념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를 속이는 사상이었고, 거기에 속아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겨 지금 이렇게 탈북자 신세가 돼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도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다. 하나님은 미신이라고, 그걸 믿는 사람은 나약한 바보들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분이 내게 종교 책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하지만 함부로 밖에 나갈 수도 없었고 미국으로 가는 방법도 마땅히 없었다. 방에 혼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언제부턴지 마음 한구석에 ‘성경을 다시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도와준 누님을 생각하면 그의 제안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난 그의 말대로 한번 더 성경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구약과 신약을 틈틈이 읽어봤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이를 안 누님은 내게 성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제안해왔다.

그렇게 누님과 성경공부가 시작됐다. 누님은 당시 논문을 쓰는 중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됐기에 어떤 날은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내게 성경을 가르쳐줬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예전 중국 유학 때 친하게 지냈던 지인을 통해 베이징 서북지역에 있는 한 동네에 거처를 마련했다. 주인은 한족 부부였는데, 내가 2년 반 정도 머무는 동안 기꺼이 나의 끼니를 책임져 주셨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안들의 불심검문이 있을 때마다 피신을 도와줬다. 나도 그의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며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한족 부부의 도움을 받아가며 누님과 성경공부를 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성경도 일독했고 성경의 웬만한 인물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막히는 부분이 생겼다. 목사가 된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성경을 조금 공부하긴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게 누님이 ‘교회에 한번 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누님은 교회에 가면 좋은 사람들도 많고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했다. 나도 매일 이렇게 방 안에서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교회에 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머물던 집에서 자전거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국제신우회’라는 교회에 가게 됐다. 성도들은 주일마다 넓은 회의장 같은 곳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첫 주일을 맞이한 아침, 자전거를 타고 교회로 가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에 기대감이 생겼다. 교회에는 왜 좋은 사람들이 많을까, 교회에 가면 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는 것인가 기대감에 마음이 설렜다. 자전거를 세우고 걸어가 교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기대하고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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