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대구은행파크가 개장한 지난 3월 9일 첫 경기인 대구FC와 제주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러 온 대구시민들이 관중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구FC 제공

“원래는 삼성라이온즈 팬이었는데 요즘은 대구FC 경기가 더 재밌어예.”

박성수(40)씨는 대구 토박이다. 어릴 때부터 삼성라이온즈 팬으로 프로야구를 즐겼다. 축구도 좋아하긴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나 유럽리그 정도만 봤다. 그런 그가 이제 대구FC 경기를 챙겨본다. 박씨는 “대구FC가 경기를 잘해서 요즘 축구 볼 맛이 난다”며 “주말에 전용구장에서 경기를 보고 싶은데 입장권 예매가 어려워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프로야구뿐이던 대구에 프로축구 바람이 불고 있다. 전국 최초 시민구단 대구FC의 드라마틱한 성공과 시설 확충, 연이은 축구 호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대구FC 우승 드라마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 최초 시민구단으로 창단된 대구FC는 지난해 역경을 딛고 창단 후 처음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FA컵은 국내 프로와 아마구단 모두가 참여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경기를 치르는 대회다. 대구FC가 우승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다. 2003년부터 K리그(프로구단끼리 시합)에 참가했지만 시민구단이라 살림이 넉넉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다른 구단에 비해 선수영입 등에서 어려움을 겪은 탓에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더욱이 2013년 K리그가 클래식(1부 리그)과 챌린지(2부 리그)로 나뉘면서 리그 하위권이던 대구FC는 챌린지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국가대표 출신으로 프로구단은 물론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맡았던 조광래 감독이 행정가로 변신해 대구FC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6년 K리그 챌린지 우승팀 안산 무궁화가 연고지 문제로 승격이 불발되면서 2위 대구가 승강 플레이오프 없이 승격이 확정되는 행운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구FC는 지난해 K리그 7위, FA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대구시의 ‘통 큰’ 투자

대구FC 전용구장 개장은 시민들이 더욱 축구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이 구장은 철저하게 관중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948년 개장해 2015년 6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구시민운동장 자리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대구시는 대구FC 건의를 받아들여 이 자리에 전용구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전엔 대구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6만 관중석의 구장을 두고 도심에 또 축구장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구시는 500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7년 6월 공사를 시작했고 올해 1월 준공해 3월 개장했다.

이 구장은 발로 바닥을 ‘쾅쾅쾅’ 두드리며 응원할 수 있는 국내 첫 축구장이다. 소리가 더 크게 날 수 있도록 아예 관중석 바닥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연면적 2만5000여㎡, 지상 3층 규모로 1만2000개의 관중석을 갖췄다. 경기장과 관중석의 거리는 7m 정도로 유럽 명문구장처럼 선수들의 경기 중 대화까지 들린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관중석 전체에 지붕을 설치했다. 관중들이 직접 좌석을 고를 수 있도록 스탠딩 응원석, 고정식인 일반석, 접이식인 고급석, 가족·연인을 위한 테이블석 등 다양한 좌석을 준비했다. 실내 응원석인 스카이박스도 8개가 설치됐다.

전용구장은 국내 처음으로 네이밍 라이츠(명칭권) 계약을 도입했다. 대구은행이 연간 15억원을 지불하기로 하고 명칭권을 구입했다. 계약은 연단위로 갱신된다. 이 때문에 전용구장 이름은 ‘DGB대구은행파크’가 됐다. 대구시민들은 이를 줄여 ‘대팍’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대구FC의 새 클럽하우스도 생겼다. 팀 컬러인 하늘색의 의미를 담아 ‘스카이 포레스트’라고 이름 붙였다. 수성구 대구체육공원 인근에 지상 4층 규모(연면적 4265㎡)로 조성됐다. 43실의 숙소와 웨이트트레이닝실, 물리치료실, 휴게실, 식당, 사무실 등 부대시설도 완벽하게 갖췄다.

U-20 국가대표팀 정정용 감독(왼쪽)과 대표팀 미드필더 대구FC 고재현(오른쪽) 선수가 지난 6월 21일 대구시에서 마련한 환영행사에 참석해 권영진 대구시장과 함께 기념촬영 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연이은 호재, 대구 축구바람 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호재도 잇따랐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 수문장으로 활약한 대구FC 골키퍼 조현우 선수가 주목을 받으면서 축구 열풍이 불었다. 여기에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사상 첫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대구 출신 정정용 대표팀 감독과 대구FC 소속 대표팀 미드필더 고재현 선수가 연일 화제가 됐다. 대구시는 이에 정 감독 등에 대한 환영행사를 열기도 했다. 정 감독의 모교인 경일대학교는 사라졌던 축구부를 재창단하기로 방침을 정하기까지 했다. 경일대 관계자는 “최근 축구부 재창단 TF팀을 꾸렸고 세부적인 사항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축구 열기는 관중 수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월드컵경기장이 홈구장일 때 1경기 평균 3000여명이던 관중 수가 전용구장으로 옮긴 후 1만명 이상이 됐다. 한 경기당 입장 수익도 1억원 이상으로 월드컵경기장 때보다 10배 이상 뛰었다. 열혈 축구팬으로 알려진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시민들이 축구를 통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시설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 후원 모임 ‘엔젤클럽’ 이호경 회장
“기업인·일반인 1880여명이 대구FC 지원군”


“정말 행복했습니다.”

대구FC를 후원하는 팬클럽인 ‘엔젤클럽’ 이호경(57) 회장은 20일 지난해 대구FC의 FA컵 우승 당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보상받는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고 답했다.

엔젤클럽은 2015년 조직됐고, 2016년 이 회장이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지역 건설업체 대표인 이 회장은 엔젤클럽을 처음 제안했다. 그는 “6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데 관중이 수백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대구시민들의 힘으로 대구FC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엔젤 초장기 회원들은 대구FC를 돕기 위해 1년에 10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기로 했다. 이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가입을 권유하는 릴레이 모집 방식으로 회원들을 모았다. 이 회장은 “처음에 수십명 정도였던 회원이 점점 늘어 2017년에는 1차 목표였던 1004명을 돌파했다”며 “입소문이 나면서 큰 기업의 오너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매년 1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20여명의 다이아몬드 엔젤(회원)도 생겨났다”고 자랑했다. 이어 “금액이 부담스러운 일반 시민들을 위해 월 1만원을 후원하는 시민엔젤도 모집했다”며 “그동안의 노력으로 현재 1400여명의 엔젤 회원과 480여명의 시민엔젤이 활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엔젤클럽은 대구FC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후원과 경기 관람은 물론 구단과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도 하고 있다. 2017년 엔젤클럽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일이 있었다. 대구FC와 전북의 경기에서 오심 논란이 있었고 이에 화가 난 엔젤 회원들은 이후 축구장에서 심판과 프로축구연맹을 향한 항의성 플래카드를 걸었다. 이 때문에 연맹에서 대구FC에 과징금 1000만원을 부과했는데 엔젤 회원들은 “과징금을 우리가 납부하자”며 모금운동을 했다. 동시에 법률자문단을 구성해 경기 가처분 신청을 내고 소송까지 준비했다.

그는 “회원들 중에 변호사, 기업인 등 전문분야 종사자들이 많아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며 “구단 측 만류로 소송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선수들이 우리의 행동에 위로를 받았는지 이후 성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처음에는 다른 목적이 있어 모였다는 의심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구FC와 대구만 생각하는 수순한 마음을 인정받았다”며 “지방구단도 명문구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축구가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