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대열 (14) 누가 날 위해 기도하며 눈물 흘릴 수 있을까

왜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날 위해 기도하며 우는지, 이들이 믿는 하나님이 궁금해져 교회 다니기로

유대열 목사(오른쪽 첫 번째)가 1999년 9월 서울 송파제일교회를 방문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교회 대표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유 목사가 탈북해 중국에서 생활할 당시 그를 위해 기도해 준 이들은 모두 이들과 같은 외국인이었다.

교회 안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피부색과 하는 말들도 모두 달랐다. 영어도 익숙하지 못한 나는 이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린 나는 이내 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순간 ‘저들이 과연 내게 좋은 사람일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교회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고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했던 누님의 말이 사실 같지 않았다.

하지만 땀을 흘려가며 거의 한 시간을 달려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교회란 곳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한번 보고라도 가자는 마음에 다시 문을 열고 예배실로 들어갔다. 맨 뒤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앞으로 나가더니 기도를 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놀랍고 신비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노래하고 기도하는데 하나같이 진지했다. 진실하고 간절해 보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 모습이 하나와 같았다. 북한에서도 모임이 있을 때는 모두 한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친다. 그러나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감시와 통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감시와 통제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토록 진지하게 마음을 다해 노래하고 기도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날 이후로 난 예배에 참석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조금씩 익숙해졌다. 영어로 진행됐던 설교도 조금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모두 착한 사람들 같아 보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교회 사람들도 내가 탈북자라는 것과 지금 살길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가 끝난 뒤 베이징경제무역대 미국인 교수 하비 테일러의 사택을 방문하게 됐다. 그의 집에 가보니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와 있었다. 점심을 함께 먹고 난 뒤 쉬고 있는 내게 테일러 교수는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를 일러줬다. 바로 나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먼저 한 사람씩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더니 이내 방 안에 모인 모두가 내 주변으로 빙 둘러섰다. 그리고는 내 머리와 어깨에 손을 얹고는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형제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이 형제의 살길을 열어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한참이 지났을까. 내 어깨와 머리에 얹은 그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모두 간절히 기도하며 울고 있었다. 그 기도 소리에 나도 울었다. 난 이제야 누님이 하셨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위해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이들은 사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난 국적 상실자다. 어디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 잡히면 끌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아무 유익도 없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가 싶었다. 이들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일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혹시 이들이 믿는 하나님이 좋은 분이기에 이들도 좋은 사람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내 마음속에 생겼다. 난 교회에 계속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 예배 뒤 광고 시간을 통해 ‘공안 당국으로부터 외국인과 중국인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기에 다음 예배 때부터 중국인은 참석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막막해졌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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