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최고책임자가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지 의심되면 국민은 불안
미·중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신냉전은 우리에게 선택 강요
교량국가는 현명한 전략 될 수 없어…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는 가장 위험한 적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야기된 엄중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지만, 우리는 사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신냉전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두만강을 넘어 대륙으로, 태평양을 넘어 아세안과 인도로 공동번영의 협력관계를 확대하겠다지만 국제정세는 중국의 ‘대륙제국’과 미국의 ‘해양제국’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낭만적 환상의 상징인 ‘유라시아’ 대륙은 이미 제국전쟁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의 평화가 현재 가장 위협받는 곳은 아시아라는 경고가 높아지는데도 대통령은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국가’가 되어 ‘평화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최고책임자가 과연 현실을 냉철하게 읽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 국민은 불안해진다. 정치적 비전은 냉철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희망을 표현하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일어났으면 좋을 일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보존하기보다는 오히려 망친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떠오른다. 진리는 현실 속에 있다.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 사이의 냉전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을 치른 우리가 평화와 통일을 꿈꾸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평화와 통일은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고, 일어나면 좋을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냉전체제가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의 해체로 끝났을 때 우리는 세계화와 함께 공동번영의 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과 시진핑의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으로 짧은 세계화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있다.

중국이 개방을 통해 발전하면 설령 민주화되지는 않더라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될 것이라는 서방의 생각은 착각으로 드러났다. 중국이 경제대국 2위가 된 2010년 일본의 GDP는 5조4900억 달러이고 중국의 GDP는 5조8800억 달러에 불과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8년 기준 세계 GDP 순위에 의하면 미국은 20조5000억 달러로 1위이고 중국은 13조6000억 달러이다. 일본은 여전히 5조 달러 대에 머물러 있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이라는 해양제국에 맞설 수 있는 대륙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우리 시대의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사실이다.

냉전은 대립하는 한쪽이 절대적 안전을 추구하면 그것이 다른 쪽에 절대적 불안전이 될 때 시작된다.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경제영토를 확장하겠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이를 저지하겠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충돌은 새로운 냉전을 야기한다. 새로운 냉전은 무역전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를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하도록 설득함으로써 유럽공동체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신냉전은 미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술전쟁이기도 하다. 5G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첨단 기술에 대한 배타적 경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신냉전은 동시에 군비 경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냉전 종식을 상징했던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의 폐기는 사실 협상에서 빠졌던 중국을 겨냥하지만, 새로운 핵군축 협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군비증강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새로운 냉전이다.

신냉전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중국제국인가 아니면 미국제국인가? 양 제국이 물러설 수 없는 냉전을 벌이는 극단의 상황에서 중간은 지극히 위험하다. 우리가 오늘날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으로 발전한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가치를 토대로 한·미·일의 긴밀한 협력 덕택이라면, 우리의 선택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정의의 민주적 가치와 자유무역질서를 중시하는 쪽이 우리의 선택이어야 한다.

신냉전 시대에 ‘교량국가’는 결코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양쪽 신뢰를 받으려다 어느 쪽에서도 신뢰받지 못하면 결국 누구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된다. 지난 100년간 아시아 최강국이었고 2010년까지 42년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이 잃어버린 패권을 찾기 위해 치밀하게 진행하는 여러 조치를 경계하고 이에 강력히 맞서면서도, 동맹과 협력 관계는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를 흔드는 주위 세력도 경계해야 하지만,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은 통일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과 환상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끼리의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가 가장 위험한 적이다. 우리에게 과연 신냉전 시대의 국익을 증대시킬 국가전략은 있는가?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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