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20m에 있는 ‘심해의 문’에 다다르면 저렇듯 외줄타기를 할 수도 있다. 사진 속 여성은 프리다이빙 챔피언이자 환경운동가인 한리 프린슬루. 저 사진에는 “우주 공간에 있는 기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글항아리 제공

우선 저 사진을 보자. 한 여성이 바닷속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진인데 이런 의구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수중에서는 몸을 위로 끌어올리는 부력 탓에 여유롭게 외줄타기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 저 여성은 어떻게 편안하게 줄 위에 서서 양팔을 벌리고 포즈까지 취한 것일까.

정답은 바다에는 ‘심해의 문(門)’이라는 지점이 있어서다. 수심 120m에 다다르면 부력과 중력은 역전된다. 사람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이 부력을 넘어선다. 심해의 문을 통과하면 인간은 발버둥치지 않는 이상 빛도, 소리도 없는 바다의 밑바닥으로 끌려 내려간다. 외줄타기도 가능하다. 심해의 문을 통과한 이들이 뻐기듯 하는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 문까지 가본 사람들은 종교적인 색채를 띤 초월, 거듭남, 영혼의 정화 같은 어휘를 들먹이며 그곳을 묘사한다. 희미하게 빛나는 새로운 우주에 진입하는 것 같다나. 다만 약간의 훈련과 믿음이면 족하다면서. 가사 상태에 이르러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깊이 내려갈수록 인체를 옥죄는 압력은 증가한다. 폐는 쪼그라들고 의식은 몽롱해진다. 수심 20m에만 도달해도 심장박동은 평상시 반으로 줄어든다. 팔다리에 있던 피는 장기를 향해 빠르게 역행한다. 100m에 이르면 환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자신이 물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쉽다. 더 깊이 내려가면 어떨까. 스쿠버 장비를 갖췄거나 잠수정에 타지 않았다면 몇 분 안에 목숨을 잃을 게 불문가지다.

그런데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이고 즐기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프리다이버들이다. 이들은 산소통이나 오리발도 없이 아득한 바닷속으로 내려간다.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는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통해 바다의 신비를 들려주는 신간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프리다이빙을 그저 “별난 취미” 정도로 여겼었다. 하지만 2011년 그리스 한 휴양지에서 열린 ‘세계 프리다이빙 챔피언십’을 취재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이버의 세계는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저자는 직접 프리다이빙 훈련을 받아 다이버로 거듭났다. 1년 6개월 동안 푸에르토리코 일본 스리랑카 등지를 돌아다니며 다이버들을 만났다. 바다로 들어가 돌고래한테 말을 걸었고, 해파리와 교감했고, 고래의 말을 들었다.

책은 구성부터 독특하다. 해수면에서 시작해 수심 60피트와 300피트를 지나 2만8700피트까지 서서히 내려가며 각 수심에 걸맞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참고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피트는 30.48㎝다). 책에서는 프리다이버의 세계와, 잠수의 역사와, 인체의 신비와, 바다의 잠재력을 들려주는 내용이 이어지고 포개지는데 재미가 상당하다.

일단 다이버들이 프리다이빙에 나서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한 다이버는 잠수를 즐기는 이유를 묻자 “고요함”이라고, 심해에 도달하면 “온몸으로 명상을 하는 기분”이라고 답한다. 많은 프리다이버는 잠수하면 눈을 감는다. 이들은 “물속 세상이 어떤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아래에 내려가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확실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런 대목이다. 인간은 지상에서는 1분도 숨을 참기가 힘들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다르다. 제주도 해녀만 하더라도 5분 넘게 잠수하곤 한다. 현재 수중 숨 참기 신기록은 11분 35초나 된다. 다른 육지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1894년 한 학자는 독특한 오리 실험을 벌였다. 야외에서 목이 졸린 오리들은 7분 만에 죽었는데 물속에서 목이 졸린 오리는 23분이나 버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 덕분이다. 1963년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지은 용어로, 물속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몸에서는 변화가 일어난다. 폐의 혈관들은 사지에 있는 피를 빨아들여 폐가 수축하는 것에 대응한다. 심장박동 속도를 떨어뜨려 산소 소비를 줄인다. 프리다이버가 일반인이 짐작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건 이 스위치가 있어서다. 저자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습관도 따지고 보면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니다”며 “얼굴에 찬물을 끼얹기만 해도 몸 안에서는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적었다. 이런 스위치가 있다는 건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깊은 바다에서 기원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만화경 같은 우주의 신비를 들려준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에 빗댔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코스모스에 비견될 정도로 진귀한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번역도 깔끔하다. 저자는 “바다를 인간의 몸에 비유하자면, 현재까지의 바다 탐험은 몸의 작동 방식을 밝히기 위해 손가락 하나를 촬영해본 것에 불과하다”고 적어두었다. 바다의 신비를 알아간다면 언젠가 우린 “생명의 시작 스위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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