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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8월 24일] 화평하지 말고 분쟁하라?


찬송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57장(통 39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2장 49~53절


말씀 : 신구약을 하나의 통일된 성경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본문에서 예수님이 한 말씀은 의아함을 자아내게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중요한 예언 중 하나인 성경 이사야에선 그분을 ‘평강의 왕’으로 말하며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할 것을 선언하기 때문입니다.(사 9:6~7)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용서, 사랑, 자비, 하나 됨 등을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31)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적용해야 할까요.

먼저 예수님 생애와 가르침은 진영을 나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비 긍휼 인내가 많은 분이지만 종교 지도자의 외식과 재물의 유혹, 소외된 자에 대한 무관심이나 압제, 구세주로서의 자기 정체성 등에 대해선 한 치의 타협도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환영하고 회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부가 드러날 게 두려워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란 누명을 씌우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가장 사모할 은사요, 그리스도인의 덕목으로 예찬한 고린도전서 13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선언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성도를 준엄하게 꾸짖고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런 입장을 충실하게 따르고자 하면 관용을 시대적 표상으로 삼는 오늘날 불가피하게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필연적인 현실로 인식하고 또 각오해야 합니다.

특히 대대로 신앙생활을 해 온 가정에서 자라지 않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상 제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부모와 모든 종교는 동등하다며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는 자녀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신앙생활을 부부의 방해물로 보는 믿지 않는 배우자가 있다면 분명 기독교 신앙은 불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꼭 유의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앞장서 불화를 주도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억하지 못하면 기독교인은 외골수란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세상 모두에게 ‘사랑의 채무자’라는 사실을 변개하거나 폐기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 믿지 않는 배우자의 구원 가능성을 고려해 가능하면 혼인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합니다.(고전 7:13~16) 믿는 배우자에겐 큰 희생일 수 있으나 배우자의 구원은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루터교 신학에서는 이런 원칙을 가르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는 자유와 관용을, 모든 것에는 사랑을.” 주님께서 이 세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합시다.

기도 : 주님, 아름다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반감을 품은 사람이 많아지는 오늘날입니다. 저희의 지혜가 부족한 탓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무지로 인해 빛나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웃에 대해 사랑과 오래참음, 기도로 다가가도록 도와주소서. 특히 극한 핍박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걷는 형제자매를 기억하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효종 목사(안성 예수사랑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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