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는 인기 끄는 ‘오빠 설교자’ 아니었다

<19> 사람 낚는 전도자가 되려면

당진동일교회 성도들이 지난 7월 교회에서 열린 금요철야예배에서 뜨겁게 찬양하고 있다. 당진동일교회 제공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3년간 동행하셨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이 부분은 적당히 흘려보낼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회를 하면서 제자를 부르신 목적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신학을 공부할 때 품었던 가장 강렬한 꿈은 성도들을 감동·감화시키는 설교자가 되는 것이었다. 소위 교회의 스타 ‘오빠’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회중들이 내 설교를 통해 눈물 흘리고 통회 자복하고 나를 바라볼 때 ‘오빠’하고 따르는 그런 설교자 말이다. 어이없는 사단의 유혹이었다.

내 꿈은 성경을 남다르게 풀어내고 감동적인 해석과 적용을 이끌어내는 그런 설교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주님은 그런 인기 스타를 위해 설교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부귀 영광을 위해, 소위 성공된 삶을 보장하기 위해 부르신 것도 아니었다. 교회를 잘 운영하는 관리자로 부르신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목회하면서 제자훈련과 양육 프로그램에 열정을 다했다. 그런데 주로 ‘정착’과 ‘순종’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목사의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대로 교회를 이끌어가고 싶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한동안 교회 몸집을 키우는 매력, 대형교회가 되는 뿌듯함, 성장주의 영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자 훈련을 하면서 무엇을 위한, 어떤 유형의 순종이 진정한 제자 됨인지, 참된 신앙인인지 깨달았다.

어느 순간 정착이란 이름으로 예배 출석 잘하고 봉사 헌신을 잘하는 그런 성도를 만들기 위해 관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착과 헌신이 있어야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성경을 보면 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그보다 더 높은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 4:18~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부르심의 목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다. 그리고 제자는 영혼 구원을 위한 사자들이었다. 그동안 속은 것을 알고 많은 세월을 허송한 것이 억울했다. 아마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인 중에 이 부르심을 알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려면 제자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 낚시는 물가에 가기 전 준비과정이 조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낚시 도구와 미끼, 낚싯줄을 던지는 위치 등 물고기 한 마리를 잡는데도 여러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물며 사람을 살리는 일이 어디 단순한 일이겠는가. 오죽하시면 주님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시려 십자가에 처참하게 매달려 돌아가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하셨다. 이를 따라 나 자신부터 먼저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몇몇 제자들을 9년간 집중해서 훈련했다, 지금은 그분들이 가는 곳에서 영혼 구원의 열매가 나오고 있다. 흐뭇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그렇게 훈련하다 보니 전도꾼이 갖추고 있어야 할 조건이 보였다. 제일의 조건은 성령 충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전도꾼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늘 성령충만한 상태로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 6:13)

전도는 영적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눅 9:1~2)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막 3:27) 이 말씀은 전도가 인간적인 힘이나 열정만으로 불가능한 일, 영적인 일임을 말해준다.

위로부터 임하시는 그 능력이 없이는 영혼을 구원시킬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왜일까. 구원은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는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게 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새벽에 3시간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밤에 중보기도를 놓을 수 없었다. 개척부터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를 쉬거나 기도의 문이 막히는 성도는 전도문이 막히는 것을 실감했다.

목회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벽기도라고 말하고 싶다. 전도할 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길 새벽마다 기도한다. 방향만 잃지 않고 제대로 한다면 기도만큼 성령 충만한 일꾼이 세워진다. 물론 그만큼 전도의 열매도 맺을 것이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