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대열 (17) 홍콩 도착 알리자 수화기 넘어 ‘할렐루야’

산 넘다 죽을 지경 이르러 배낭 비우기로… 모두 버렸지만 물과 성경책 두 권은 남겨

유대열 목사(오른쪽 빨간색 동그라미)가 1999년 9월 서울 송파제일교회를 방문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교회 대표들과 함께했다. 베이징 국제신우회에서 만난 성도들도 이들처럼 피부색이 달랐지만 유 목사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했다.

아열대 지역이라 무척 더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 열사병으로 쓰러질 뻔한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필요한 것만 담는다고 담았는데도 배낭의 무게는 20kg이 넘었다. 길을 떠날 때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절 고마운 분들이 주신 것이라 평생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살리라’는 생각에 배낭에 넣었다. 힘이 다 빠져 죽을 지경이 되고 보니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비우고 나자 배낭 맨 밑에 있던 성경책 두 권이 나왔다. 한 권은 도모코 누님이 처음으로 준 ‘현대인의 성경’이었고, 다른 한 권은 국제신우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사용했던 영어 성경이었다. 성경을 버리려고 손에 들었는데, 내 마음에 갑자기 ‘너 성경 버릴 거야. 그거 버리면 너도 죽는 거야’란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렇다. 죽어도 성경은 버릴 수 없었다. 성경은 그저 책이 아니었다. 말씀을 통해 우리 구주를 만나게 한 생명의 책이었다. 성경책들을 다시 배낭에 넣었다. 물과 성경책 두 권만 짊어지고 다시 산을 넘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태양에 물도 다 마셔버려 남은 건 오직 성경뿐이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 한 가지 생각만 또렷이 떠올랐다.

‘하나님, 예수 믿는 사람은 죽으면 천국에 간다지요? 그렇게 바라던 자유의 땅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내가 천국에 갈 줄 믿습니다. 하나님, 고향 땅에 계신 사랑하는 부모님을 천국 가면 만나게 해주세요.’

그 순간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너와 함께하마, 어서 일어나 가거라’.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다시 내 귀에 들려왔다. ‘얘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마. 어서 일어나 가거라.’ 아주 분명하고 또렷한 음성이었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다시 힘을 내 산을 올랐다. 네발로 기어가다시피 하며 겨우 산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로 바다가 보였다. 건너편으로 홍콩 땅이 멀리 보이는 듯했다. 산 정상에서 하룻밤을 쉰 뒤 반대편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마침내 해안가에 이르렀다. 이제 바다를 건너야 했다. 상어 출몰 지역임을 알리는 바다 위 깃발도, 해상 경계를 서던 홍콩 해양경비대의 쾌속정도 기도와 함께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가는 내 길을 막지 못했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주님은 날 홍콩 땅으로 인도하셨다. 육지에 다다르자 절로 기도가 나왔다.

‘살아서 이 바다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를 두 팔로 안아 넘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해변을 따라 길게 뻗은 산등선을 따라 한참 걸었다. 작은 마을에 이르자 어느 집 마당에 걸려 있는 옷가지를 몇 개 주워 입었다. 바다를 건너느라 흠뻑 젖은 속옷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시내로 들어선 나는 루켕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열차를 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베이징 국제신우회 분들에게 내 소식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베이징경제무역대학의 하비 테일러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건너편으로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국제신우회 성도들이 나를 위해 밤마다 모여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다. 식인상어가 출몰하는 바다를 살아서 건널 수 있었던 데에는 나 혼자의 기도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테일러 교수와의 마지막 통화를 마쳤다. 꼭 한 번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지금까지도 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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