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 오종건(오른쪽 세 번째) 센터장을 비롯한 수련 교수,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생, 간호사, 코디네이터 등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얼마 전 지방의 한 공사현장에서 추락해 크게 다친 A씨는 인근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뱃속 장기 파열과 함께 항문이 찢어지고 골반이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해당 병원에 정형외과 외상 전문의가 없어 난감했다. 인공항문을 다는 등 다른 처치는 긴급히 이뤄졌지만 골반 골절 응급수술은 불가능했다.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고 3주간 병상에 누워만 있다가 결국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이송됐다. 정형외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중증 외상팀이 A씨의 부서진 골반을 재건했다.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 현재 한 달에 한번씩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공사장 추락이나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A씨처럼 생명이 위급한 중증 외상 환자들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강한 충격으로 살이 찢기고 사지가 으깨지는 것은 물론 장이나 간, 비장, 횡격막 등 내부 장기가 터지고 출혈이 심하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이런 중증 외상 환자는 연간 21만6641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19만7839명)보다 9.5%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4만6051명(21.26%), 서울 4만2045명(19.41%), 경북 1만4754명(6.81%), 인천 1만4410명(6.65%), 전북 1만3703명(6.33%), 충남 1만3627명(6.29%) 등 순으로 많이 발생했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이 전체 발생의 절반 가까이(47.32%) 차지했다.

전국에는 중증 외상 환자들에게 365일, 24시간 응급수술 등 치료를 제공하는 17개 권역외상센터가 지정·운영되고 있다. 다만 서울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국립중앙의료원은 2023년, 경남 권역외상센터인 경상대병원은 내년 말에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이 119 구급대 등에 의해 권역외상센터로 응급 수송되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의사들이 바로 ‘중증외상 전문의들’이다. 필요에 따라선 응급의료 전용 닥터헬기(날아다니는 응급실)를 타고 사고 현장에 직접 출동해 ‘골든아워(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금쪽같이 귀중한 시간)’를 지켜낸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총상 입은 북한군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대표적 외상 전문의다.

문제는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할 전문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한외상학회에 등록된 국내 외상외과 전문의는 257명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는 180명 정도로 집계돼 있다.

최근 공개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기준 17개 권역외상센터 전문의 수는 센터당 평균 11명에 그쳤다. 국회 예산처가 추산한 적정 전문의 수(23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국종 교수를 통해 국내 중증외상 치료 인프라의 열악함이 집중 조명되고 정부도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병원 입장에선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외상 분야에 시설이나 인력을 투자하기 쉽지 않다는 게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 구로병원은 국내 유일 보건복지부 지정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를 운영하며 외상 전문의를 길러내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 센터장을 맡은 오종건 교수와 수련의들이 외상 환자의 다리 부위를 살펴보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종건 정형외과 교수는 26일 “과거 구로공단이 가까워 손·발가락 절단 등 외상 환자들을 많이 치료한 노하우가 있고, 다른 기관과 달리 병원 경영진이 수익에 별 도움이 안 돼도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는 게 병원 정체성에 맞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 포기하지 않고 6년째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2014년 같이 수련센터로 선정됐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5년간 운영해 오다 올해 수련의 지원이 끊겨 결국 지정을 반납했다. 오 교수는 “미디어에 조명된 이국종 교수처럼 멋있는 외상 전문의를 꿈꾸며 수련센터에 왔다가 나아지지 않는 국내 중증외상 치료 현실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수련의 지원이 끊기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고대 구로병원은 올해도 신경외과 전문의 1명, 정형외과 전문의 2명이 지원해 수련을 받고 있다.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 수련생은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전문의만 지원할 수 있다. 수련센터에서 2년간 외상환자 치료에 필요한 각종 의료술을 배우고 재난현장 헬기 접근 구조 훈련 등을 마치면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 자격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정형외과 5명, 신경외과 2명, 외과 2명 등 모두 9명이 이곳에서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를 획득해 전국 권역외상센터나 대학병원 등에서 일하고 있다. 사공승엽(32) 수련의는 부산백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고 군의관 복무 뒤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수련받고 있다.

그는 “외상 중 가장 많은 골절 치료 분야를 제대로 배워 보고싶어 지원했다”면서 “1주일에 15명 정도의 골절, 외상 후 합병증(감염 등) 환자 수술에 참여하는데 몸은 힘들지만 보람 있다”고 말했다. 수련센터장인 오 교수는 골절 치료 분야 국내 최고 명의로 손꼽힌다.

올해 3월부터 수련 중인 임익주(31)씨도 “골절 환자 사례가 다양해 외상 치료에 대해 세부적으로 배우기 좋다”고 했다.

오 교수는 인구 1000만명의 서울에 아직 외상센터가 없는 현실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그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중증외상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데, 사실상 외상 치료 공백 상태나 마찬가지”라며 “빅5병원 등에서 환자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전담 외상팀이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2023년 국립중앙의료원(서울 원지동 이전 예정)에 서울권역외상센터가 들어서지만 1곳으론 서울에서 발생하는 중증외상 환자를 모두 소화하기 역부족인 만큼, 최소한 3곳은 더 있어야 한다.

오 교수는 “새 건물을 짓기가 여의치 않으면 기존 상급종합병원에 외상팀과 치료 인프라를 갖추도록 지원해 소규모라도 외상센터 기능을 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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