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대열 (18) 홍콩 특별수용소 수감… “예수쟁이” 소문

다른 탈북 수용자들도 가까이 안 해… 중국 도피 생활 도와준 주인집 부부 교회 개척하며 다시 만나

유대열 목사(앞에서 강의하는 사람)가 2010년 8월 서울 남포교회 하나로청년회 여름수련회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고 있다.

열차를 타고 홍콩 중심으로 들어갔다. 다음 목표는 국제앰네스티 홍콩지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근처 호텔을 통해 수소문해 그곳을 찾았다. 사무실로 들어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직원들에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며 도움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틀에 걸친 조사 끝에 내 담당자가 정해졌다. 북한에 계시는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 철저히 비공개로 해달라는 내 요구를 받아 준 그는 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길은 홍콩 정부 기관이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난 홍콩 이민국으로 공식 인도됐다. 그들은 날 ‘상수이 특별수용소’에 가뒀다.

이 수용소는 중국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던 인사들이 중국의 탄압을 피해 홍콩으로 넘어왔을 때 외국 망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임시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한국으로 가는 탈북자들을 다음 절차 전까지 임시 수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내 신상과 탈북 이유, 동기, 홍콩까지 온 경로 등을 조사했다. 어느 나라로 가기를 원하는지도 질문했다. 특히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경로를 자세히 물었는데, 내가 식인상어 출몰지역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말에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심문이 끝난 후 그들은 내 손에 쇠고랑을 채웠다. 일단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내 소지품도 모두 조사했는데 내게 남은 건 약간의 돈과 성경책 두 권이 전부였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난 노동자, 과학자, 군인, 의사, 지하교회 성도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 그중 평성 국가과학원에서 근무했다는 분을 만났는데 그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보며 매일 기도한다는 걸 알고는 경악했다. 주체사상의 허상에는 동의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 후로 그는 ‘예수쟁이, 미친 사람’이라며 나에 대한 소문을 냈고 다른 탈북자들도 웬만해서는 내게 가까이 오질 않았다.

반대로 중국에서 숨어 살 때 내 거처를 마련해주고 선전까지 나와 동행해 준 중국인 주인집 형님 내외 분은 나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됐다. 다시 못 볼 것 같던 그들과의 재회는 16년 만에 이뤄졌다. 난 한국에 온 후 2011년 3월 하나로교회를 개척했다. 교회 개척을 위해 함께 기도하던 목사님, 장로님들과 함께 중국 투먼의 두만강 가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북한을 위한 기도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현지 선교사들과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사연을 듣던 한 선교사가 내게 중국 주인집 형님의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형님은 가난했기에 전화가 없었다. 난 형님의 처가댁 번호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형님 집 근처에 있는 샹그릴라 호텔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났다. 16년 만에 다시 만난 형님 내외분은 당시 내가 그곳에 살 때 갖고 있던 소지품도 모두 갖고 나오셨다. 우린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형님 내외는 “만약 네가 그 바다를 무사히 건너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나님이 진짜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도 하나님 믿겠다고 다짐했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난 그들에게 중국 목사님을 소개해줬다. 중국에서 살 때, 같이 교회에 가자고 그렇게 권했지만 끝내 가지 않던 그들이었다. 내가 살아 돌아옴으로써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됐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