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적 균형 깨뜨린 북핵, 북은 이미 고압적 자세로 전환
비핵화 외교 총력 기울이되 외교 실패 의 경우 대비해야
세계가 급변하는 역사 변곡점 낡은 질서 매달리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의 금년 광복절 경축사 결론 하나는 이렇다. “임기 내에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 그 토대 위에서 평화경제를 시작하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겠다.” 맞는 말씀이다.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될 것이 별로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우리의 사활적 국익이고 가장 시급한 과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대실패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핵문제는 한 치도 개선된 것이 없다.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능력은 더 확장되고 있고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 사실을 보면 문재인정부 들어와 북한은 핵무장을 완성했고, 북한의 핵위협은 역대 최악이 됐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한이 그 결단을 해야 가능하다.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했고,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1~2년 내에 비핵화를 완료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북한이 진정 비핵화를 결단했다면 빠른 시일 내에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러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28일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북한은 미국의 빅딜 제안을 거부했던 것이다. 혹자들은 미국의 빅딜 제안을 시대착오적이며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이 정확히 검증되지 않으면 진정한 비핵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북한이 비핵화하고자 한다면 미국의 빅딜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상응조치를 논하는 것이 정도다. 정부는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의 목표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력을 동원하도록 협조하는 것이 맞다. 북한이 비핵화 하면 정치, 군사, 경제적 대가는 크게 줘도 좋다. 그러나 미국이 핵동결이나 핵군축, 핵비확산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억제에 머무르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뒤로 미루는 것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위험이다.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일관되고 완고하게 유지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한·미 공조와 국제공조체제를 주도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그 토대 위에서 경제를 건설하려는 것 같다. 북한 출판물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의 봄은 오지 않는다. 지금 현실을 보라. 우선 남북 간의 정치적 존중과 신뢰를 찾아볼 수 없다. 핵을 가진 북한은 남한에 대해 대단히 고압적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겁먹은 개’ 수준으로 경멸하며 ‘삶은 소대가리’가 비웃는다고 조롱한다. 이런 참혹한 말을 듣는 국민은 매우 불쾌하다. 앞으로도 북한은 이러한 불평등관계를 고착시키려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이 한반도의 전략적 문제에 관한 외교권을 대표하려 한다. 북한은 미국과만 대화할 것이니 문 대통령은 기웃거리거나 끼어들지 말고 빠지라고 공박한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문 대통령을 들러리 세워놓고 미·북 정상만 대화를 나눴는데 이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다. 또한 작금에 주변 4강이 남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북한의 핵무기는 한반도 외교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그 위험이 더 실질적이고 파괴적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을 완전히 파괴했다. 북한은 연달아 미사일을 발사하며 맞을 짓을 하지 말라고 우리를 협박한다. 북한이 우리의 군사문제를 사사건건 시비함으로써 남북군사합의는 사실상 무력화됐고 국지도발의 위험성은 더 커졌다.

우리는 비핵화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되 외교가 실패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핵위협 앞에서 단결하고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계속 위협당하고 굴종을 강요받게 된다. 핵문제와는 무관하게 개방과 문화교류를 통해 남북 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대비태세를 갖춰 나간다. 자주국방을 강화해 북한을 억제한다. 또 신냉전의 세계질서 변화에 맞춰 한·미 동맹을 격상한다. 치명적인 북한의 핵무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들을 강구하는 것은 자위권 발동이다. 군사적 균형이 이루어지면 그때 상호위협 감소를 추구하는 남북한 간 외교가 작동할 수 있다. 1980년대 유럽에서 그러했다. 세계질서의 변화는 우리가 피하고 싶어도 절대로 한반도를 피해가지 않는다. 요동치는 변화에 위축되지 말고 이것을 북핵 대처, 우리의 발전과 통일이라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중차대한 시기다. 우리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하고 국력을 키우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일은 하지 말자. 남북한의 역학관계가 달라졌고 세계가 급변하는데 낡은 질서에 매달려 있는 것은 위험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잘못 선택하거나 어정쩡하게 굴다가는 우리 민족의 앞날이 처참해진다. 120년 전 저질렀던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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