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이 없는 숫자다. 녹고 얼기를 반복했을 700년이라는 시간의 두께는 가늠조차 어렵다. 굳이 갖다 붙이면 조선 건국이 1392년이니 그즈음에 씨앗을 품고 몸집을 키웠을 것이다. 이 막강한 무게의 시간이 최근 멈췄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에서 희귀한 장례식이 열렸다. 수도 레이캬비크 북동쪽에 있는 해발 1198m 오크(Ok) 화산을 덮고 있었던 오크예퀴들(Okjokull·오크 빙하)은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빙하는 시간 그 자체다. 최초의 눈 씨앗 위에 다음 해 그리고 또 다음 해 눈이 얹어지면서 무게를 더하고, 그 압력으로 단단한 얼음이 된다. 오크예퀴들은 2014년에 이미 죽었다는 판정을 받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오크 화산의 정상 대부분을 덮을 만큼 위용을 자랑했던 오크예퀴들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크 화산의 꼭대기 분화구에만 얼음이 덮여 있는 정도다.

장례식에는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와 전 세계 기후학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제는 얼음 덩어리 수준으로 전락한 오크예퀴들 앞에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추모비도 세웠다. 추모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졌다. ‘오크예퀴들은 아이슬란드에서 최초로 빙하의 지위를 잃었다. 앞으로 200년 안에 아이슬란드의 주요 빙하들이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영국과 노르웨이, 그린란드가 이루는 북대서양 삼각형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아이슬란드는 얼음의 땅이다. 2000년 300개가 넘었던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불과 17년 새 56개의 동족을 잃었다. 이 숫자엔 오크예퀴들도 들어간다. 녹고 어는 게 운명이라지만, 큰 빙하까지 사라진다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은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해수면 상승과 빙하기 도래다. 빙하는 지구 육지의 약 10%를 차지하고, 남극과 그린란드에 넓은 빙상(ice sheet)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빙하는 지구 전체 민물의 75%를 저장하고 있다. 이게 다 녹으면 해수면은 약 60m 상승한다.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수의 순환에 고장이 난다. 뜨거운 바닷물과 차가운 바닷물이 섞이고 돌지 않으면 고위도 지역은 기온 급강하라는 빙하기를 맞게 된다. 영화 ‘투모로우’에서처럼.

폭염, 가뭄에 따른 식량 위기도 큰 위협 중 하나다. 시리아에서는 2006년부터 10년가량 겪은 극심한 가뭄으로 농업이 무너졌다. 대기근에 시리아인 상당수는 고향을, 국가를 떠났다. 이 ‘기후난민’은 유럽의 정치·경제를 뒤흔들었고, 급기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촉발했다. 기후변화가 새로운 병원균의 출현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 진균이 출몰하고, 열대성 전염병 발생지역에서 감염속도가 빨라지는 일들이 관찰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미래를 담보로 잡은 질주’를 멈추지 않으면 조만간 인류 대다수는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병으로 죽는다고 경고한다. 끝이 빤히 보이는 미친 질주를 멈추는 방법을 인류가 모르는 건 아니다. 2015년에 이미 파리기후변화협약이라는 실마리도 만들었다. 다만 실천하지 않을 뿐.

천연자원을 제한 없이 소비하고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지금의 경제성장 시스템은 모래성이다. 그 모래성에 사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는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고실업률이란 뉴노멀(new normal)에 빠져 있다. 새로운 표준이라 부르지만 사실 대침체다. 당장 필요한 건 총수요의 확대일지 모른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혁신, 사회·경제구조 전환에 막대한 수요가 대기하고 있다. 환경 투자는 돈 먹는 하마로 보일 수 있다. 태양광발전, 수소차만 해도 경제성이라는 장벽을 완벽하게 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질주의 대가로 인류는 멸종이라는 고지서를 받았다. 그걸 오크예퀴들 앞에 세워진 추모비가 말해준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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