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비도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수구꼴통의 공격으로 깎아내리는 민주화 세대의 진영논리에 젊은이들 분노해

청렴하고 경륜 있는 보수와 이상적이고 유능한 진보가 경쟁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지난해 대학입시 면접관을 하며 놀란 것은 면접 대상 학생 37명 전원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꼽았다는 점이다.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이 책이 한 온라인 서점 집계 20년 누적 판매량 9위라니, 온 국민 필독서라 할 만하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책에 담긴 공리주의, 분배적 정의, 칸트의 도덕 개념 등이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티나게 팔린 것은 ‘정의’에 갈증을 느끼는 젊은이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력한 ‘정의 신드롬’은 역설적으로 활발한 계층이동이 가능했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계급이 구조화된 영국이나 광범한 직업세습이 두드러진 일본에서는 상류층과 일반인은 소가 닭 보듯, 닭이 소 보듯 서로 질투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인은 평등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탓에 공정성에 유난히 민감하다. 1949년 단행된 농지개혁으로 지주층이 해체되고, 광범하게 창출된 소농 중심으로 ‘상승 이동의 열망’이 넘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가 됐다. 대학교육은 확실한 상승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대폭 확장된 기회는 산업화 세대에게 ‘나라를 만들었다’는 성취감과 확실한 상승 이동의 효능감을 가져다주었다. 권위주의에 저항한 민주화 세대는 청년기에 저항과 투쟁을 거치며 희생을 치렀지만, ‘나라를 바로잡았다’라는 자부심과 함께 팽창하는 일자리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역설의 땅’이다. 대졸자가 30%도 되지 않았던 산업화나 민주화 세대에 비하면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대졸자다. 그러나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다. 대졸자에게 걸맞은 일자리는 500만개인데, 대졸자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공공부문 정규직이나 대기업 공채를 빼고 나면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서도 2년짜리 계약직을 전전하는 이들이 다수다. 취업, 결혼, 출산을 모두 위험으로 인지하는 젊은 세대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데도 행복감은 급락하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로 치솟은 ‘풍요의 역설’을 체감한다. 구직을 포기하고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NEET)족이 200만명에 가깝다.

아시아 1등급 민주주의를 한다지만,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다. 제도권 정치가 작동하지 않아서 끓어 넘친 민심이 촛불인데, 본연의 자리인 의회를 뛰쳐 나와 촛불을 뒤쫓던 정치세력이 ‘촛불혁명’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데 실망한다. 민주화 세대가 독점한 여의도 정치는 좌우로 나뉘어 서로의 발목을 잡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일 따름이다. 사회적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며 위반자를 처벌하는 심판, 즉 입법·사법·행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바닥이다. 심판을 믿지 못하는 심각한 ‘신뢰 적자’ 사회에서 판정에 승복하지 않으니, 사회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화의 역설’이다.

‘샌델의 정의’를 구현하려 한 것은 이명박정부였다.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창한 ‘공정사회론’의 요지는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진 업적주의 사회’, 풀어 쓰면 ‘패자부활이 가능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 그러나 정권이 쓴 ‘공정’을 국민은 ‘반칙불허’라고 읽었다. 그 결과는 강력한 부메랑.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논란 끝에 낙마했고, 장관 후보자 신재민과 이재훈도 낙마했다. 딸 특별채용 논란에 휩싸인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사퇴했다.

‘반칙불허’의 국민 정서를 제대로 읽은 것은 문재인정부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그의 분신이라 알려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을 둘러싼 부메랑 효과도 태풍급이 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이 더 노력하면 뒤처지게 된 ‘지위재’를 둘러싼 경쟁에 지친 젊은 세대는 공정성에 특히 민감하다. 불평등은 소득이나 자산만이 아니다. 2013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조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0.35, 자산 불평등은 0.62에 불과한 데 비해 인맥의 불평등은 0.815에 달했다. 이는 전체 국민의 83%는 인맥의 덕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지만, 상위 0.3%에 해당하는 지도층은 유력인사를 통한 인맥 효과를 독점했다는 뜻이다.

청년층의 70%는 무당파다. ‘부패한 수구 꼴통 보수’를 ‘무능하고 이념적이며 비도덕적인 진보’가 대체했다고 느낀다. 조국 후보자의 비도덕성에 대한 젊은이의 문제 제기를 수꼴(수구 꼴통)의 공격으로 깎아내리는 민주화 세대의 진영논리 앞에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조국발 갈등이 드러낸 것은 ‘도덕성’ 없는 ‘도덕주의’ 정치의 민낯이다. ‘청렴하고 경륜 있는 보수’와 ‘이상적이고 유능한 진보’ 간의 경쟁이 되어야 이 나라에도 미래가 있다.

이재열(서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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