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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민태원] 자존심 구긴 병리학회가 할 일


질병의 원인과 진행 과정을 다루는 병리학은 의학, 병원 또는 의과대학에서 조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초 의학과 임상 의학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병리학 교실을 어떤 의대에서는 기초 의학 쪽에 두기도 하고 그러면서 대부분의 병리학 교수들은 병원에서 일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의사들의 의뢰로 진단 쪽 일을 주로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좀 더 연구 쪽에 기울어져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러고 보면 병리학이란 게 의학의 기초를 잘 알아야 하면서도 또 임상으로 바로 연결되는 학문이다. 그래서 병리학자들은 ‘의사 중의 의사’로 불린다. 그만큼 자부심도 크고 자존심도 세다. 그런데 이런 병리학 의사들의 자존심을 크게 구기는 일이 벌어졌다.

생뚱맞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의학논문 때문이다. 그것도 후보자 본인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이 고등학생 때 참여해 작성된 논문이 대한병리학회지에 실린 게 발단이 됐다. 조 후보자의 딸은 한영외고에 재학하던 2008년 단국대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가량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같은 해 12월 단국대의대 교수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영어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해당 논문은 이듬해 병리학회지 7~8월호에 게재됐다. 이를 두고 과연 조 후보자의 딸이 고작 2주간 인터십 참여로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됐고 연구부정 논란에 휩싸였다. 이 논문 덕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그런데 불똥이 엉뚱하게 대한병리학회와 병리학회지 폄훼로 튀었다. 인터넷과 SNS 등에는 진영 논리에 따라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학술지를 평가절하하는 글들이 나돌고 있다. 학술지 인용지수(Impact Factor)가 낮다거나 논문 수준이 고교생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 등이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문제된 논문이 ‘에세이로 써서 제출하는 보고서’로 학술지 수준이 낮은 게 문제”라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려 논란이 됐다. 입시 부정과 연관된 사안을 관리 감독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로서 부적절하다. 정치권에는 조 후보자를 방어하기 위한 대응 논리가 담긴 출처 불명의 괴문서도 나돌았다. 그 문건에는 ‘조 후보자 딸 같은 고등학생도 쉽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준’으로 학술지를 깎아내리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자존심 센 병리학 의사들이 뿔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병리학회는 73년 전통을 자랑하는 전문 학술단체이고 병리학회지도 52년째 발간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출판되는 280여개 의·약학 분야 학술지 가운데 최상위급으로 평가받는다. 문제의 논문이 게재될 2009년 당시에는 전체 의·약학 학술지 가운데 과학기술논문색인 확장판(SCIE) 등재 학술지는 30개 미만이었고 그중에 병리학회지도 올라 있었다. 급기야 대한병리학회는 내부 통신망에 이사장 명의의 서신문을 올리고 “정치적 이슈로 학회가 부당하게 평가받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한 대학병원의 병리학 교수도 “반세기 넘게 위상을 쌓아온 학술지에 대한 심각한 명예 훼손이고 모독”이라며 분노했다.

조 후보자 딸이 ‘논문 스펙 쌓기’로 실제 대학 입시에서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은 앞으로 열릴 인사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지면 된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연구부정과 연구윤리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는 건 학계의 몫이다. 특히 뜻하지 않게 정쟁에 휘말린 병리학회는 상처입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를 가려내야 한다.

학회는 논문의 책임저자에게 조 후보자 딸이 제1저자로 표시된 과정과 공동 저자들 간 합의가 있었는지 등 제기된 의혹의 소명을 요구해 놓은 상황이다. 조사 결과 저자 부당 표시가 밝혀지면 수정 권고나 논문 자진 철회, 나아가 학회 직권 철회까지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상위단체인 대한의학회, 관계 당국과 함께 연구·출판 윤리 규정 강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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