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하라 (2) 키워준 엄마와 운명적 만남 이어준 ‘나의 미소’

길에서 헤매다 파출소 보호 받는 중 한 아주머니의 부름에 살포시 웃었던 기억이 엄마와 첫 만남

시각장애인 가수 오하라씨가 지난해 말 경기도 평택 서부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평택교향악단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1973년 여름 뜨거웠던 해가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젊은 아주머니의 손을 잡아끌고 동네 파출소로 향했다. 젊은 아주머니는 영 마음이 편치 못한지 머뭇거렸다. 할머니가 아주머니의 등을 떠밀었고 파출소 구석에 앉아있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데리고 갔다.

여자아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긴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는 데다 왼쪽 볼에는 누군가 손톱으로 할퀴었는지 아직 아물지 않은 흉터가 있어 보기 안쓰러웠다. 손에는 파출소에서 저녁으로 준 빵과 우유가 들려 있었다.

젊은 아주머니가 “아가”라고 부르자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쳐다보더니 조그만 이를 드러내며 살포시 웃었다. 순간 아주머니의 마음은 ‘이 아이는 내 자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나를 키워준 엄마와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기억을 더듬으며 정리해 본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낳아주신 부모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당시 다들 내 나이가 네 살이라고 믿었는데 집도 부모 성함도 모르는 내가 “나이는 네 살”이라고 정확히 말한 까닭이다.

나는 길에서 헤매다 어찌어찌해 파출소의 보호를 받게 됐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날 보육원으로 보내질 처지였다. 당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엄마를 이웃집 할머니가 “이참에 아이 하나 데려다 키우라”며 파출소로 끌고 갔던 것이다.

사실 엄마는 아이를 데려다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보고 웃는 모습에 마음이 ‘확’ 바뀌었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하신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오하라씨는 늘 웃는 얼굴이라 예뻐요”라며 칭찬해 준다. 나의 미소, 그 미소가 나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내가 한 일이겠는가.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섭리였음을….

엄마는 지난 5월 20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치매도 있고 정신이 흐릿해 요양원에 계셨었다. 하지만 찾아뵐 때마다 다른 사람은 몰라봐도 언제나 나는 알아보셨다. 본인의 나이도 내가 앞을 못 본다는 사실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내 이름과 얼굴은 기억하셨기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정말 고마운 우리 엄마. 엄마를 만난 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었다. 1970년 대만 해도 집마다 아이들이 너덧 명씩이었고 많은 집은 7남매, 8남매도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기에 형제 많은 집을 부러워하며 외로움을 많이 타셨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해 아이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을 때 얼마나 절망하셨을지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엄마는 “내 속으로 낳았으면 이렇게 예쁜 딸 못 낳았을 거야.” “그러니 예쁜 딸 키우라는 신의 뜻이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엄마를 못 만났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생각만 해도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길러주신 부모님, 낳아주신 부모님.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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