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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정현수] 꿈꾸기도 벅찬 청년들

부모 지위에 따른 출발선 차이로 체념하는 청년들… 사회가 이 박탈감에 진지하게 답해야


지난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인턴기자 후배로부터 메시지를 한 통을 받았다. 8주간의 인턴 기간이 끝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지 않은 탓에 그 후배와 이야기를 나눠본 건 우연히 합석하게 된 술자리에서 딱 한 번이었다. 후배는 그 한 번의 만남을 잊지 않고, “그날 해준 이야기들이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참 기특한 후배구나’ 내심 흐뭇해하며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다음 대목에서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실 처음에는 인턴십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며 “회사에 다른 선배들처럼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도 아니고, 큰 회사에서 실습하면 내 현실에 비해 꿈만 더 커질까봐 (겁이 났다)”고 했다.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차리기도 이른 나이에 대학간판 같은 스펙으로 한계를 먼저 그어버리는 청년의 모습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이미 대다수 청년에겐 꿈도 적당히 꿔야 하는 세상이 된 건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지난달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을 취재하면서 만난 청년들에게서도 비슷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업은 지역 사업체 일자리와 구직 청년을 매칭한 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좋은 취지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은 적어도 1~2년간 월 200만원 정도를 받으며 업무역량을 키울 수 있고, 지역 기업들의 만성적인 구인난도 해소할 수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 인력 유출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직접 찾은 현장은 그럴싸해 보이는 겉과 매우 달랐다. 동네 음식점이나 커피숍 서빙, 편의점 아르바이트, 너무 영세해 1~2년 뒤에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조차 없는 일터에서 청년들이 일하고 있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 대개 그렇듯 양적 성과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청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일자리까지 우후죽순 끼어 있었다. 사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지자체 관계자, 일자리 전문가, 그런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 심지어 인건비 지원을 받는 사업주까지도 그게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지 못했다.

더 가슴 아팠던 건 몇몇 청년들에게서 엿보이는 일종의 ‘체념’이었다. 자신의 미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청년은 “지금 하는 일이 향후 당신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어차피 다른 곳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고, 이런 시골에서는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다. 그 이후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청년들은 현실에 치여 꿈꾸기를 유예하고 있었다.

대다수 청년에게 사치가 되어 버린 꿈은 이제 누가 꾸나. 운 좋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처럼 ‘좋은 부모’를 만난 청년들에게나 허용되지 않을까 싶다.

인턴십에 고작 2주 동안 참여하고도 근사한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청년들 말이다. 시험에서 두 번이나 낙제점을 받아도 “포기하지 말라”며 학기마다 장학금 200만원씩 총 6학기를 선뜻 후원해 줄 수 있는 관대한 지도교수까지 있으니 금상첨화겠다. 그렇게 그들은 평범한 청년들이 노력이나 열정 따위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거리를 벌리고 있다. 물론 그런 든든한 배경을 둔 청년들 사이에서의 경쟁도 나름 치열할 테다. 하지만 그 바깥에 있는 청년들에게는 그 경쟁에 낄 기회조차 사라져버린 게 현실이다.

“생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19살 때부터 노동하다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와 부자 부모 만나 엘리트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어떻게 출발점이 같은가.”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김모군의 동료 정주영씨가 이번 논란을 바라보며 울분에 차 했던 말이다. 조 후보자와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느끼는 이 박탈감에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정치색이 꼈다느니, 검찰개혁 완수가 우선이라느니 핑계를 대며 대충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현실에 체념한 청년들은 저마다 가진 꿈을 더 작게 깎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현수 이슈&탐사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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