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정맥혈전증 예방클리닉 송교영(왼쪽) 교수가 위암 수술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환자는 정맥혈전증 예방을 위해 암 수술 전·후 두 다리에 ‘공기 압박기(IPC)’를 착용했다.

최근들어 소화불량이 심해진 김모(56)씨는 식사 때마다 속이 더부룩했다. 위내시경 검사 결과 위 중간 부분에 4㎝ 크기의 암이 발견됐다. 다행히 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지 않아 의사는 복강경 절제술로 치료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 받기 하루 전 입원한 김씨는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특별한 처치’를 받았다. 양쪽 다리에 ‘간헐적 공기압박기(IPC)’라는 걸 착용했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혈압계의 커프’처럼 다리를 감싸서 간헐적으로 공기 압박을 줘 혈액 순환을 좋게 해 주는 장비다.

하지에 몰린 피를 심장으로 올려 보내는 다리 혈관을 막히게 하는 혈전(피떡)을 녹이고 혈관 확장 효과를 낸다. 평소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고 다리가 간혹 저릴 때가 있었던 김씨는 수술을 마친 뒤 피를 묽게 해 주는 항응고제(저분자량 헤파린) 주사도 하루에 한번씩 맞았다. 또 수술 다음 날부터 매일 10~20분씩 걷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계속 IPC를 찼다. 김씨는 합병증 없이 입원 1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간헐적 공기압박기(IPC)

정맥혈전증은 흔히 비행기 여행 중 좁은 좌석에 오래 앉아 있을 때 다리 깊숙이 있는 큰 혈관(심부정맥)에 혈전이 발생한다고 해서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으로도 불리는 질환이다. 근래에는 장시간 앉아 게임을 하는 게임중독자들에게도 정맥혈전증이 잘 생기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심부정맥은 다리의 혈액 90%를 심장으로 보내는 혈관이다. 이곳에 생긴 혈전이 떨어져 바로 폐로 들어가 폐동맥을 막게 되면 숨쉬기 곤란하고 가슴통증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부르며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러한 정맥혈전증을 예방하려면 누워 있거나 앉아있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은 암 환자는 병상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고 운동량이 적어지면서 혈전이 발생하기 쉽다. 정맥혈전증은 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만한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다. 미국암학회는 암을 비롯해 1시간 이상 걸리는 주요 수술을 할 때는 반드시 정맥혈전증 예방에 힘써도록 권고하고 있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정맥혈전증 예방클리닉 송교영(위장관외과) 교수는 2일 “암 자체가 피를 끈적끈적하게 하는 물질을 만들기도 하고 암 수술 후 하루 정도는 꼼짝않고 누워있어야 하는 등의 환경적 요인이 크다”면서 “위암은 정맥혈전증 위험이 높은 암종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선 위암 환자의 정맥혈전증 예방을 위해 항응고제인 헤파린 투여를 수술 치침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맥혈전증이 드물게 발생하고 항응고제가 출혈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로 약물 사용을 자제해 왔다.

실제 한 대학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자료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서양에 비해 아직 정맥혈전증 발생률이 낮지만 매년 증가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 국가의 연간 정맥혈전증 발병률은 인구 10만명 당 114~184명으로 알려진다. 국내 정맥혈전증 발생 빈도는 2004년 인구 10만명당 8.83명, 2008년 13.8명, 2010년 22.6명, 2012년 25.6명, 2013년 29.2명으로 점차 늘고 있다. 여기에는 위암을 비롯한 암 환자의 수술이나 항암치료 후 정맥혈전증 발생이 어느정도 기여를 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위암 수술 후 정맥혈전증 발생 빈도는 얼마나 될까. 서울성모병원 송교영, 김장용 교수팀이 지난해 10월 미국의사협회 외과학술지(JAMA Surgery)에 발표한 한국인 위암 환자 대상 연구에 다르면 2011~2015년 위암절제술을 받은 환자 666명을 조사한 결과 2.1%(14명)에서 다리 정맥에 피가 응고돼 혈전이 생긴 정맥혈전증이 발생한 걸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수술 후 정맥혈전증 예방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간헐적 공기압박기 사용 환자군(336명)과 공기 압박기 사용과 헤파린 투여를 병용한 환자군(330명)을 비교한 결과 공기 압박기 사용과 헤파린 투여 병용군의 정맥혈전증 발생률(0.6%)이 공기 압박기만 사용군(3.6%) 보다 혈전증 발생이 6분의 1수준으로 낮았지만 출혈 위험은 더 높았다.

송 교수는 “보통 위암을 이겨내는 치료에 집중하다 보니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정맥혈전증을 간과하기 쉽다”면서 “혈전증을 예방하려면 최소한 공기 압박기나 탄력 스타킹 같은 물리적 방법을 활용하고, 출혈 문제가 없는 환자의 경우 헤파린 같은 항응고제도 적극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혈 위험 유무는 간기능이나 혈소판 수치, 혈액 응고 요소 등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정맥혈전증 예방클리닉은 정맥혈전증 고위험군을 적극 관리하기 위해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사전에 위험도를 평가하고 위험 정도를 예측하는 전산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면 혈관·이식외과와 협진을 통해 증상이 빠르게 해소될 수 있도록 조치한다. 혈관·이식외과 김장용 교수는 “정맥혈전증은 병원 내 비예측 사망(원인 모를 급사)의 주요 원인으로 발생 후 치료 보다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