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협하는 신권위주의 네 가지 공통점은
①의회 경시 ②정치 분열 이용 ③여론 선동 ④기득권 공격
文정권의 조국 사태 대응에 신권위주의 징후가 보인다
나라를 두 동강 내고, 내전하듯 몰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최근 세계적으로 신권위주의(new authoritarianism)라는 개념이 회자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면서 부각된 용어다. 1980년대 필리핀 한국 대만 등 발전도상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열풍은 넬슨 만델라의 남아공을 거쳐 급기야 냉전을 무너뜨리고 동구권으로 확산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평처럼 ‘자유민주주의의 찬란한 세계화’를 구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자유민주주의는 곳곳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민주주의의 자리를 신권위주의가 밀고 들어온다. 여기에도 두 유형이 있다.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푸틴의 러시아나 역시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에르도안의 터키처럼 ‘신독재형 권위주의’ 정권이 그 하나다. 다른 한편에는 포퓰리즘 정권들이 있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사이에는 경계가 희미하다. 반대자들을 포용하고 설득하기보다는 열광적인 지지층을 등에 업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좌우 포퓰리즘 정권이 늘어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포퓰리즘형 신권위주의 지도자로 꼽힌다.

어떤 유형이든 신권위주의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의회를 경시하고 행정 권력에 의존한다. 둘째, 정치적 통합을 지향하기보다는 정치적 분열을 이용한다. 셋째, 선동적인 여론몰이를 즐겨 쓴다. 넷째, 기득권을 공격하고 테크노크라트들을 경멸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도 신권위주의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화운동을 훈장 삼아 ‘나는 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녕 민주주의자인지는 권력을 쥐여줘 봐야 안다. 억압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 억압자가 되는 역설은 역사에서 흔히 반복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 집권세력이 ‘촛불혁명’을 유독 내세울 때부터 조짐은 있었다. 혁명이라는 말은 반혁명이라는 말을 거울 이미지로 불러온다.

반혁명세력은 척결되어야 하므로 권력의 칼은 절제의 미덕을 지키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반혁명이라는 말은 적폐라는 말로 포장되고, 2년에 가까운 적폐몰이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정부’라 불릴 만큼 권력은 청와대로 집중되었다. 장관들의 존재감은 없고, 청와대 비서들의 존재감은 한껏 올라갔다. 청와대 정부에서 여전히 여당은 청와대의 국회 심부름센터로 야당은 발목이나 잡는 존재로 간주된다. 국민 전체보다 지지층에 매달리는 국정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미동맹이나 한·일관계 등 국가전략의 기본 틀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안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무시되고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으로 밀어붙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인데 자신들이 불통 정부라 비판했던 그 정부들보다 대통령이 기자들을 만나는 장면을 더 볼 수가 없다. 대통령이 일방적 메시지만 전하고 이에 대해 직접 물을 수 없다면 그것은 온전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또한 국회에서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협치라는 말이 무색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선거의 룰을 제1야당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하고는 양립하기 어렵다. 브라질 없이 유럽 국가들만 모여 경기 인원과 골대 크기를 바꾸고 월드컵을 하자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새 게임규칙이 장점이 많더라도 당사자 합의 없이 강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인 ‘적정한 절차(due process)’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국 사태를 다루는 집권세력의 태도에서도 신권위주의의 징후를 본다. 이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과 염치의 문제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했고(羞惡之心), 그것을 의(義)라고 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정의의 바탕이다. 공교롭게도 법무부의 영어 명칭은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다. 법무부 장관은 ‘미스터 정의’로 상징된다. 부끄러움은 가장 먼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달랐을 때 나온다. 이것을 염치라 한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20여명 후보자들은 불법 때문이 아니라 염치 때문에 물러났다. 지금 국민은 자신이 손가락질했던 불공정과 특혜를 자신과 가족은 버젓이 자행하고 있었다는 위선에 화가 난 것인데 불법을 피한 ‘법꾸라지’니 문제없다고 우긴다. 수사를 받으면서 장관직을 무슨 낯으로 유지하느냐고 공격했던 그가 사실상 피의자 신분이 되어 ‘미스터 정의’가 되려 하고 있다. 정권은 총동원령을 내려 차기 주자든 정권 홍위병이든 ‘닥치고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압수수색을 한 검찰은 엉덩이에 뿔난 못된 송아지로 타박을 한다. 정권의 선봉대들이 매일 실시간 검색어를 만들어 선동하고 사실상 여론 공작을 부끄럼 없이 자행한다. 이것이 신권위주의가 아니면 무엇일까? 이쯤에서 나라를 두 동강 내고 마치 변형된 내전을 치르는 것같이 몰아가는 정치가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민주주의였는지 묻고 싶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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