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심상찮다. 한·미 관계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니지만 최근 불협화음은 과거와 차원이 달라 보인다. 동맹의 기본인 상호 신뢰의 기반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러 종국엔 동맹이 와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한·일 갈등은 이제 한·미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태를 촉발한 근본 원인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가해 사실이다. 하지만 징용공 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다루는 과정은 전형적인 긴장 악화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본은 역사 문제를 빌미로 경제 보복을 가했고, 한국은 이에 지소미아 종료라는 안보 분야로의 확전을 결정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한·일 관계의 추락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이로 인해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일관되게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결정이 한국 방어를 더 어렵게 하고 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이나 랜디 슈라이버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등도 연이어 우려를 표시했다. 청와대는 미국 정부에 충분히 설명했고 양해를 구했다고 했는데 왜 지속적으로 한국 정부의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오는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돌아보면 답은 간단하다. 나토 같은 다자안보체제가 없는 동아시아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연계함으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자 한 것은 미국의 숙원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는 두 핵심 동맹국이다. 지금도 미국은 미·일동맹을 ‘주춧돌(cornerstone)’로, 한·미동맹을 ‘린치핀(linchpin)’으로 부르며 중요시한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각자 제 기능을 충실히 다해왔지만 정작 한·미·일 삼국을 엮는 협력에서 한·일관계는 항상 약한 고리로 간주돼 왔다. 한·일 간에는 오랜 역사 문제 갈등이나 영유권 문제로 인해 특히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이 진척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자 미국은 한·일 지소미아 협정 체결을 희망했고, 그것이 이명박정부 시기 우여곡절을 거쳐 박근혜정부 들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지소미아 파기는 문재인정부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보이콧하겠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문재인정부는 지소미아가 한·일 문제이고 한·미관계와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의 뺨을 때린 것이나 진배없다.

청와대는 최근 한·미 갈등 상황에 대해 동맹도 국익보다 우선할 순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일 지소미아 종료가 국익에 맞는지, 경제 보복을 안보 보복으로 확전해 한·미·일 안보협력 가능성을 사실상 봉쇄해버린 결정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한국이 처한 안보환경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정학적 충돌과 강대국 세력경쟁이 횡행하는 힘겨운 시기가 될 전망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주도 패권 질서 하에서 억제됐던 역내 세력정치가 미국의 리더십 축소와 국제질서 약화로 드러나면서 역내 국가들은 너나 없이 지정학적 이익에 충실한 대외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규범이나 가치보다 이익과 실리를 추구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치열한 국익 위주 외교전쟁이 벌어지는 국제무대에서 유사시 한국이 도움받을 곳은 어디인가? 중국인가, 일본인가, 러시아인가? 그것도 아니면 북한인가?

트럼프 리스크로 불확실성이 커지긴 했지만 우리 외교·안보의 기본은 여전히 한·미동맹이다. 하지만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는 트럼프 탓에 한국이 동맹인 미국의 홀대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거기에다 외교부 차관이 주한 미국대사를 초치하고 청와대는 주한미군 기지의 조기반환을 공개 요구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중시하지 않으면 중국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며, 미국도 한국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한·미·일 협력에서 점차 멀어지면 언젠가는 우리가 일부러 하지 않아도 애치슨 라인 밖으로 나가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흔들리는 한·미동맹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국익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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