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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관심과 간섭의 경계


사생활 대화 꺼리는 젊은 세대
관심 있기에 간섭, 그러나 별개
관심은 사랑, 간섭은 욕심 반영
잔소리 아닌 ‘조언’이 바람직


자기 아빠 꼰대란 소리 들을까 걱정된다며 사회 초년생 딸아이들이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젊은 직원들한테 사생활을 가급적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데 업무 얘기만 하면 너무 삭막하지 않느냐고 해도 막무가내다. 사적 영역은 관심 자체를 갖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특히 결혼과 관련된 얘기는 절대 금물이란다.

“나이든 분들은 남 결혼에 대해 쓸데없이 왜 그렇게 간섭하려는지 모르겠어요. 결혼했느냐는 물음에 했다고 하면 (배우자가) 몇 살이냐, 무슨 대학 나왔느냐, 고향이 어디냐, 직장이 어디냐, 둘이 성격은 잘 맞느냐, 어떻게 만났느냐, 잘 해주느냐, 아이는 몇 낳을 계획이냐며 끝없이 질문을 해요. 안 했다고 해도 왜 아직 안 했느냐, 사귀는 사람 있느냐, 연애한 적 있느냐, 어떤 스타일 좋아하냐, 직장 안에 호감 가는 사람 없느냐, 집에서 빨리 결혼하라고 압력 넣지 않느냐며 역시 끝도 없이 물어요. 젊은 사람들 짜증나지 않겠어요.”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 기대와 달리 직장동료, 친구, 동네이웃 할 것 없이 곧잘 가족 현황을 물어보곤 한다. 친해지려면 상대방 관심사를 빨리 파악해야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개인사를 캐묻게 된다. 매사 과유불급이라고, 일정한 선을 넘으면 안 되겠지만 지인의 사생활에 적당히 관심 갖는 건 당연하고,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특히 직장에서 크든 작든 조직의 관리자가 되면 직원들의 사생활 파악하는 건 일정 부분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이따금씩 만나는 사람인 경우 다음 만남을 위해 가족사항 등을 메모해 두기도 한다. ‘노모 치매로 요양원 계심, 아내 직장 2년 전 그만둠, 딸 사회복지공무원 합격해 ○○구청 근무, 아들 로스쿨 준비 중….’ 기억했다가 가족 안부 물어보는데 ‘쓸데없이 남 일에 관심 갖는다’며 싫은 표정 짓는 사람 아직은 본 적이 없다.

이런 주제로 아이들과 토론하다 보면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관심이냐, 간섭이냐에 대한 인식 차이다. 나는 친해지기 위해 당연히 할 수 있는 수준의 관심을 표시했다는데 아이들은 짜증나는 간섭으로 분류한다. 극복하기 힘든 세대차이 아닐까 싶긴 하다. 임홍택이 쓴 신세대 안내서 ‘90년생이 온다’를 읽어보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략은 이해하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뭘 몰라서 그렇다는 생각에 이들을 설득하고 싶어지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 꼰대 축에 든 탓일까. 아재라면 몰라도 꼰대란 소린 결코 듣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관심과 간섭은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낱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관심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 간섭은 ‘직접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부당하게 참견함’이라 돼 있다. ‘정신경영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문요한은 관심과 간섭을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 여부와 상대방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개입 여부로 구분한다.

그는 “관심은 연민 호감 호기심이라는 감정의 토대 위에 비롯되는, 대상에 대한 판단 이전의 이끌림이며 간섭은 감정보다 이성의 토대 위에 비롯되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판단적 개입”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관심의 목적은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데 있지만 간섭의 목적은 상대방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명쾌한 구분이라 생각된다.

시인 김영자도 ‘관심과 간섭’이란 시에서 명확한 구분을 시도한다. “관심과 간섭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 종이 한 장의 차이일까 아니면 하늘과 땅 만큼일까. (중략) 모든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기는 원하나 간섭 받기는 싫어하더군요. 관심이 돌봄이요 보살핌이라면 간섭은 참견이요 조정함입니다. 관심은 항상 상대방 중심이요 간섭은 항상 자기중심입니다. (중략) 이제 이 두 마디 말을 섞어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간섭은 버리고 관심은 잘 키워 나 오늘 어디에 있든지 하늘나라를 가꾸는 자 되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심과 간섭의 경계가 모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간섭은 대개 관심에서 시작된다. 누구한테든 관심이 있기에 간섭하는 것이다. 관심이 없다면 간섭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특히 자녀를 키우면서 이런 고민에 봉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녀한테 관심 없는 부모가 없을진대 관심과 간섭의 경계를 넘나드는 건 필연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마찰을 빚는 케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나도 요즘 다 큰 아이들을 대하며 관심과 간섭의 ‘이상적인 거리’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하곤 한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큰 아이와 취업준비생인 막내한테 아빠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관심 표시를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듯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발견한 답은 조언(助言)이다. 조언의 사전적 의미는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 친한 친구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건 당연하다. 이들에게 간섭으로 비쳐지는 게 싫다고 해서 관심에 머무는 건 무책임함이라 생각된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보는 건 어떨까. 고장난 축음기를 연상케 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애정이 듬뿍 담긴 조언이라면 어느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간섭에 이르기 전, 여기서 딱 멈추는 게 좋을 것 같다. 조언은 사랑이지만 간섭은 욕심 아닐까 싶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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