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친정 식구들이 휴일 오후에 다 같이 모였을 때의 일이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오빠가 급히 나갈 준비를 하며 말을 했다. “갑자기 문상할 일이 생겼어.” 그 말을 들은 고등학생 조카가 물었다. “문상? 문화상품권 말이야?” 지금은 이런 대화를 들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지만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 상황이 굉장히 낯설었다. 며칠 전 옆에서 책을 읽던 아이가 내게 “엄마, 이제 영숙하러 갈게요”라고 말을 했다. “뭐? 영숙이가 뭐야?”라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숙’이라는 단어로 떠오르는 의미는 사람 이름 말고는 없었다. “아. 영숙은 영어 숙제의 줄임말이에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참 별걸 다 줄여 말하는구나 생각했다.

어느 시대나 줄임말은 있었다. 1980년대에도 유행하던 줄임말들이 엄청 많았다. 예를 들면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등은 아직도 기억나는 말이다. 줄임말들은 왜 등장하는 것일까. 일단 단어가 길면 줄여서 써야 경제적이다. SNS에서도 원래 단어를 적는 것보다 줄여서 쓰는 게 간편하다. 또 어떤 단어를, 왜 줄여서 쓰는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주요 관심사를 알게 해준다.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의 동질감도 느끼게 해준다.

요즘은 줄일 필요가 없는 짧은 단어들을 줄여 쓰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말을 줄여서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세대 간의 차이를 구별하는 기준 자체가 줄임말을 얼마나 알아듣느냐 듣지 못하느냐로 나뉘기도 한다. 예전에는 줄임말의 양상이 단어 몇 개를 줄여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문장 전체를 줄이는 경우도 많다. 줄임말만 들어서는 원래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이유다. 줄임말은 계속 생겨나고 사라진다. 무분별하게 단어를 줄여 써서 언어를 파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세대 간의 간극을 벌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줄임말 문화는 이어질 듯하고, 앞으로 어떤 말을 줄이게 될지 궁금해진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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