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장년 심신의 쉼터, 교회 안에 둥지 틀다

서울 대조동루터교회

최태성 목사(왼쪽 두 번째)와 공혜정 대조동주민센터 주무관(오른쪽)이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루터교회 앞에서 쉼터를 이용하는 중장년들과 웃고 있다.

1인 가구, 중장년과 노인 비율이 높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이곳 중장년들에게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생겼다. 대조동루터교회(최태성 목사)가 평일에 공간을 제공하고 대조동주민센터가 안마의자와 원목 탁자 등을 채운 덕분이다. 지난달 27일 찾아간 교회엔 허름한 옷차림의 중장년 남성들이 둘러앉아 신문과 책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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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숙인이었다는 이창남(47)씨는 젊어서 금형 조각을 하다 지금은 전단을 나눠주는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땀 흘리며 전단을 나눠주고 나면 꼭 쉼터를 찾았다. 커피 추출기에서 직접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다른 교회에 갔다가 남루하다는 이유로 쫓겨난 적이 있다”며 “여기 교회는 눈치를 안 줘서 좋다”고 말했다.

이은식(50)씨는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으며 ‘제왕과 책사’란 책을 읽고 있었다. 안마의자 역시 주민센터가 선물했다. 그는 “기도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고 새벽예배에서 듣는 설교는 안식을 준다”고 말했다.

주민센터에서 기증한 안마의자를 이용하는 모습.

대조동루터교회는 지난 7월 주민센터와 ‘중장년 쉼터 조성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쉴 곳 없는 중장년의 안부를 확인하고 재취업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2016년 서울시 고독사 실태 파악 보고서에 따르면 고독사한 이들 중 45~64세 중장년이 62%에 달했다. 대조동 역시 중장년 및 노인 비율이 39.6%이기에 교회가 장소와 프로그램 등을 선뜻 제공했다.

공혜정 대조동주민센터 복지지원팀 주무관은 “교회의 중장년 쉼터 모델이 서울시로부터 인정받아 고독사 예방을 위한 주민관계망 형성사업 지원을 받게 됐다”며 “평일엔 문을 닫는 교회가 많은데 이렇게 지역을 위해 공간을 개방하니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조동루터교회 기도실.

교회 내 쉼터를 찾는 중장년 중에는 대기업 출신도 여럿 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과 단절되자 낮에는 숨어 지내고 밤에는 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공 주무관은 쉼터를 수시로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지난달엔 헬렌 켈러와 같은 삶을 사는 소녀 이야기를 다룬 인도 영화 ‘블랙’을 보고 이들과 함께 냉면도 나눴다.

함께하는 기쁨 속에 이들의 삶도 변화하고 있다. 이창남씨는 헬렌 켈러와 같이 이웃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은식씨는 새벽예배에 참여하며 성경을 두 번 통독했다.

최 목사는 “많은 중장년이 고시원이나 반지하 단칸방에 살며 사회적 실패자라는 시선 때문에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찾아가고 함께 마음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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