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너그러워지기’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에겐 관대하지만,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사람 말이다. 완벽주의는 스스로 안전하게 느끼는 방식이다. 완벽주의자에겐 자기 비난의 패턴이 있다. 실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습관적으로 자신을 비난하며 괴로워하는 감정의 악순환에 빠지곤 한다.

‘자기 자비(self-compassion)’ 연구자로 알려진 미국 텍사스대학 크리스틴 네프 교수는 “완벽주의자는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높은 기준을 세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자기 자비란 실패나 좌절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돌봐주고 친절하게 토닥여주는 ‘너그러움’이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듯이 자신을 너그럽고 자애롭게 대하는 태도이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비는 자존감보다 더 건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사회에서 중시된 가치 중 하나는 자존감이었다. 사람들은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 낮은 자존감이며,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최근 자존감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 심리학 서적들도 많이 출간됐다. 2000년대 이후 출판된 서적 중 연관된 제목의 책이 200권이 넘는다. 진학과 취업 결혼 육아에 이르는 삶의 전 단계에서 극심해진 경쟁으로부터 개인의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반작용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에 대해 연구해 왔다. 지금까지 내려진 큰 결론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자존감만을 상승시키려는 시도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 높은 자존감보다 좌절을 막는 데 더 효과적이란 연구 보고도 있다.

자존감은 주로 타인과 나 자신을 비교할 때 나타난다. 자기 자비는 타인에 빗대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개념이다. 자기 자비는 자신의 가치를 깨달아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자기 자비를 지닌 사람은 실수를 평가하기보다 인간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한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고 여긴다. 너그러움, 자기 자비는 삶의 좌절을 성공적으로 견디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자신에 대해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정적인 정서를 빨리 극복하고 회복한다. 자기 자비 태도를 가진 리더가 있는 그룹의 성과도 높다.

우린 살면서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한다. 인생은 늘 빛날 수는 없다. 원하는 만큼 성취하지 못할 때도 많다. 시험을 망쳤을 때, 직장에서 실수했을 때, 입사시험에 떨어졌을 때 스스로 어떤 말을 해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기대했던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잘했든 못했든, 시험에 붙었든 떨어졌든, 연애가 잘되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자기 자비의 태도이다.

자비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시다.”(새번역, 시편 103:8)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고 태어났기에 인간 안에도 이런 자비의 마음이 있다. 성령의 다섯 번째 열매가 자비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치열한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청년들, 꿈조차 꾸기 힘든 청년들에게 ‘자기 자비의 시간’을 권하고 싶다. 나 자신이 멋지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을 때조차, 아니 그럴 때일수록 더욱 나를 잘 돌볼 수 있도록 ‘나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를 가져보자.

이것은 맹목적인 자존감 추구보다 더 우리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줄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을 나에게도 보내고, 친구에게 할 법한 친절한 행동을 나에게도 하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가족 직장동료들에게 이런 자기 자비의 격려를 듣는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그 말은 누군가도 듣고 싶어하는 말이란 것을 기억하자.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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