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하라 (5) “왜 내게 이런 천벌이”… 36세에 망막색소변성증

짐 되기 싫어 극단적 선택… 장애 이유로 삶 포기한 자신에게 미안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

시각장애인 가수 오하라가 시력을 잃기 전인 1994년 4월 가족 소풍에서 포즈를 취했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배드민턴 채를 들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내게 딸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아니야 그냥 좀 이상해서…. 다시 치자.” 그러나 날아오는 셔틀콕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다시 망연히 서 있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인생이 그 셔틀콕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것을….

내 나이 36세. 이름도 생소하고 어려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피곤해 일시적으로 시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급기야 나중엔 시야마저 좁아졌다. 주변 사물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났다. 허겁지겁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많이 진행돼 거의 실명 상태였다.

현대의학으로는 어떤 치료방법이 없었다. 개인차가 심하고 정확히 연구되지 않은 희귀병이었다. 의사에게 “희귀병이며 실명에 이르는 난치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절망감에 휩싸였다.

‘왜 내게 이런 천벌이 내려졌지?’ 원통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과 세상, 나중엔 신마저 원망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나를 위로하며 힘과 용기를 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한창 사춘기 아이들에게 엄마인 내가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절망하게 했기 때문이다.

더듬거리며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물론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됐다.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정말 신이 있다면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신은 없는 거야. 모두 다 꺼져버려!”

하지만 주님은 시련과 고난을 통해 더 큰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어둠을 사랑의 빛으로 밝히셨다. 그날도 고통스럽게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다시 한번 극단적 선택을 하려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물음 하나가 뇌리에 스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의 문턱에서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좋은 집에 못 살아 보고 좋은 곳에 못 가보고 좋은 옷 못 입어 보고 좋은 차 못 타본 것들? 그게 아니었다. 떠오른 생각은 ‘왜 좀 더 사랑하며 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왜 부모님께 효도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말 대신 내 딸로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했을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때까지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은커녕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증오하며 죽으려고 하지 않았는가.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뭐라 할 수 없는 안타까움, 서러움이 밀려왔다. 부끄러웠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볼 수 없어도 가진 게 없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실로 그것은 기적이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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