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일본인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8월 서울 옛 서대문형무소의 독립투사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일제의 강압 통치를 사죄해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로 꼽히는 그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의 경제 제재는 분명히 잘못된 조치”라며 아베 신조 총리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민주당 정부를 이끌었던 하토야마 전 총리는 54년간 일본을 통치해 온 자민당 독주 체제를 무너뜨린 주역이다. 그는 “일본의 정체성은 아시아에 있다”면서 ‘입아’(入亞·아시아를 지향함)를 강조했다.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했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다. 이러한 하토야마의 탈미(脫美)·동아시아 중심 정책을 뒤집은 게 2012년 다시 집권한 아베 현 총리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중국과 갈라서고 미국과 밀착했다.

흥미로운 건 하토야마와 아베의 대조적 외교·안보 전략이 그들 조상의 노선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는 1954년 12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자민당 내의 친중국파를 대표했던 그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위 대표단을 초청하고 일본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기를 바라는 미국의 압력에 저항했다. 중국과 국교 수립도 추진해 미국이 골치를 썩였다.

이러한 물줄기를 한순간에 바꿔 버린 게 하토야마 이치로를 이은 기시 노부스케 총리다. 그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다. 기시는 당시 중국과의 교류 확대로 기울던 일본의 정치·이념적 지형을 친미로 뒤집어버렸다. 기시는 1960년 일본 내 기지를 미군이 이용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해 현재 미·일동맹의 토대를 만들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롤모델로 외할아버지 기시를 꼽는다.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한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의 꿈은 기시의 꿈이기도 하다.

하토야마의 동아시아 정치경제 공동체 구상은 미·일 관계 악화에 대한 여론의 반발, 하토야마 개인의 지도력 부족으로 실패로 끝났다. 지금은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만 하토야마 전 총리의 탈미입아 전략이 일본에서 다시 득세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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