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고교 2학년 은주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다. 부모의 기대 속에서 성적에 집착하다 우연히 꼴등 봉구와 가까워졌고, 풋풋한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했더니 7등으로 떨어졌다. 냉랭해진 부모의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견디지 못해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다. 영화는 실제 있었던 전교 1등 중3 여학생의 투신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제목도 그의 유서에서 가져왔다.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공부만 하는 학생이 되기 싫은데… 엄마, 성적 때문에 친구를 미워해야 하는데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왜 이렇게 무서운 세상을 만드셨나요.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 영화는 1989년 개봉했다.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초·중·고 12년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했고 그 결과가 인생을 좌우했다. 매년 학력고사가 끝나면 좌절한 수험생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이런 문제를 의식해 1993년 수능이 도입됐다. 8월과 11월 두 번 시험 쳐서 좋은 점수를 활용케 했는데,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절 실패로 다시 한 번이 됐다. 1996년 도입 때 전체의 1.4%에 불과했던 수시모집은 지금 70% 이상을 차지한다. 무시험 대학전형 교육개혁(2002학년도)과 입학사정관제(2008학년도)가 수시 확대를 이끌었다. 성적이 아닌 평가 요소를 늘리는 식이었고 수천 가지 전형이 등장했다. 교내외 활동 실적 같은 스펙이 중요해졌다.

외형상 ‘행복=성적순’에서 벗어난 듯 보였지만 스펙에는 부모의 재력과 배경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교육은 더 많아졌고 더 다양해졌고 더 비싸졌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금수저와 흙수저의 경쟁이 매우 불공평한 ‘행복=수저순’이 됐다. 학생부종합전형(2014학년도) 이후는 성적순에서 벗어나려고 해온 일을 하나씩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어학성적의 학생부 기재 금지, 논문 금지, 출판실적 금지, 해외봉사 금지….

그렇게 땜질하던 와중에 조국 사태가 터졌다. 딸의 스펙에 놀란 사람들은 “행복은 수저순이 아니잖아”를 외치고 있다. 성적순의 무서운 세상을 바꾸려다 수저순의 불공정한 세상이 됐다. 자,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다시 성적순으로? 대입제도 개편을 지시한 대통령에겐 복안이 있을까? 과연 입시를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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