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 계명, 삶의 첫자리에 둬야

박호종 목사의 ‘다음세대와 기도의 집을 세우라’ <10·끝>

서울 서초구 더크로스처치에서 지난 7월 열린 ‘라스트러너 콘퍼런스’에서 청년들이 손을 들고 뜨겁게 찬양하고 있다. 더크로스처치 제공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예수님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의 동기이자 목적이며 능력이다. 주님은 사랑으로 아담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은 헌신은 나의 의를 세우기 마련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역은 종교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도의 집은 24시간 동안의 기도와 경배 자체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기도의 집 운동은 교회가 주님이 거하시는 집이 되기 위해 기도와 찬양의 처소로 단장되는 첫 계명의 회복 운동이다. 내 경험과 지식이 아닌 주님을 의지하며, 다른 어떤 일보다 주님을 사랑함을 우선순위에 두는 삶. 다윗은 이 소원으로 멈추지 않는 기도와 찬양의 장막을 시작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역대상 13장을 보면, 하나님의 언약 증표와 같은 법궤를 다윗이 얼마나 사모했는지 발견할 수 있다.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기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참변이 발생한다. 법궤를 나르던 소가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흔들리던 법궤를 붙잡은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이다.

다윗은 고민에 잠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한다. 마침내 그는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법궤를 우상을 나르듯 운반하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다윗은 말씀을 되새긴다. 율법에 따라 레위인을 성결케 하고 법궤를 매게 한다. 웃사의 죽음을 통해 잊혔던 하나님의 법이 회복됐다. 잠든 듯했던 하나님의 위대함이 이스라엘을 다시 다스리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의 회복은 모세오경의 회복을 말한다. 그리고 모세오경의 중심이 바로 첫 계명이다. 우리가 마음과 힘을 다해 사수하고 헌신해야 할 일은 24시간 교회 시스템이 아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을 더 알기를 오늘도 갈망하는 것이다. 많은 율법 중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인지 묻는 한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을 까먹도록 허용하셨다.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기도 하셨다. 그리고 율법사들에게 도전하신다. “율법이 왜 기록된 것이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함이 아니냐.”

첫 계명이 삶의 첫자리에 와야 한다. 모든 사역의 첫자리에 첫 계명을 두어야 한다. 사랑 없는 섬김은 우상숭배이고 사랑 없는 체험은 신비주의이며 사랑 없는, 성경에 대한 논의들은 율법적 행위들일 뿐이다.

주님은 마지막 때가 가까운 오늘, 온전한 사랑 이외의 다른 이물질들이 제거되도록 교회를 단장하고 계신다. 이 사랑에 사로잡힌 자들이 주야로 하나님을 구하고 외치는 것은 기도의 집의 의미와 가치에 동의한다. 어떤 값을 내더라도 예배를 선택하는 신부들, 주님의 마음과 연합된 신부들이 깨어나고 있다.

박호종 목사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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