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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슈바이처 메르켈… 목회자 가정교육이 남다른 이유

1세대 목사 가정 이야기/클라우스 핏셴 지음/이미선 옮김/홍성사

마르틴 루터 가족은 당시 개신교 성도에게 삶과 신앙의 기준이 됐다. 독일 화가 아돌프 폰 멘첼이 그린 그림 ‘가족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루터’. 홍성사 제공

헤르만 헤세, 카를 구스타프 융, 알베르트 슈바이처, 앙겔라 메르켈의 공통점은? 소설가와 심리학자, 의사와 정치인, 직업으로 볼 때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독일 목사의 자녀라는 것이다.

독일을 넘어 세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이 목사 가정에서 배출됐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독일 개신교 교회사학자인 저자는 이들이 자신이 목사관(목사와 가족이 거주했던 집) 출신임을 밝힘으로써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냈다고 봤다. 독일인들은 목사 자녀를 떠올릴 때 보통 ‘검약’ ‘엄격함’ ‘정신적 승화’ 등을 떠올린다. 이 같은 요소들은 대체로 젊은 세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목사의 자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양식을 가정에서 배우고 익히며 또래보다 빨리 지도력이나 협상 등 사회생활에 긴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고 본다.

알자스 지역의 목사 아들 슈바이처는 예수의 사랑과 기독교적 윤리가 세계로 확산돼야 한다는 소신으로 아프리카 가봉에서 인술을 펼쳤다. 인도 선교사의 아들 헤세는 종교가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이 아닌 신뢰와 사랑, 구원을 제시할 것을 기대하며 아시아 종교에 관심을 보였다. 메르켈은 냉전 시기 동독교회를 돕기 위해 서독을 떠난 목사이자 신학자인 호르스트 카스너의 딸이다. 현재 총리로서 독일을 대표하는 메르켈은 목사관 출신 인물 중 가장 유명하다. 저자는 목사관에서의 유년 시절과 목사 자녀로 또래집단에서 받은 소외 경험 등이 메르켈의 정치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목사 자녀가 모두 이들처럼 입신양명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목사관 출신 인물 51명 가운데는 테러리스트나 나치 돌격대 중대장도 포함돼 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처럼 목사 아들이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고 경멸한 경우도 있다.


책은 목사 자녀 인물평뿐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출범한 목사와 목사 가정의 역할도 비중 있게 다룬다. 목사 가정의 삶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전직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의 결혼에서 출발했다. 이들 부부가 생활한 비텐베르크의 아우구스티누스수도원은 독일 목사관의 시초다. 이곳은 친척부터 친구 대학생 손님 등이 두루 거쳐 가는 ‘열려있는 집’이었다. 개신교 성도에게 루터 가족은 그 자체로 삶의 기준이 됐다. 일반인이 참고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신앙 교본’이었던 셈이다. 목사처럼 목사 가족도 공과 사 모두에서 신앙적으로 본이 돼야 한다는 기준이 이때 등장했다. 저자 표현대로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집’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 사모나 목회자 자녀가 겪는 어려움과도 비슷하다.

급변하는 사회와 목사상의 변화도 집중적으로 다룬다. 산업화와 세속화를 겪으면서 목사는 500년 전 수행했던 교사, 예술가, 의사로서의 역할을 전문인에게 내줬다. 공식 종교의례로 통했던 결혼도 줄어드는 형편이다. 저자는 사회 변화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목사관이 현대의 다양한 생활 방식을 수용해 기독교적 가치인 타인에 대한 개방성을 실현할 것을 제안한다.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이 시대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는 한국교회 목회자에게도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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