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호 총장의 성경과 선교] 예수님 인격과 생애 자체가 인류 구원 위한 선교

<19> 예수님의 선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학생들이 2016년 6월 네팔 빈민지역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아신대 제공

신약에서 언급하는 복음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나 유대인이 아닌 자들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롬 2:10~11)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마 28:19)며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창 12:3)과 이사야서의 약속(사 49:6)과 같은 구약의 선교적 의지를 확증한 것이다.

선교에 관한 연구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한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동안에 사람들을 불러서 가르치고 보냈다. 예수님의 선교사역 정점은 세상을 향해 열두 제자를 보내고, 칠십인 전도단을 파송해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데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은 복음의 보편적인 기초가 됐다.

각각의 복음서가 조금씩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선교적 목적은 같다. 모든 복음서는 성경의 중심인물이며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기독교 선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며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도, 석가모니도 자신을 믿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자체가 선교다. 선교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와 행적 전체에 기초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알 때 지상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에 관련된 구절을 많은 사람이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정작 18절에서 언급하는 예수님에 대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절)라는 구절을 통해 믿는 자들이 전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잘 모른다거나 그분의 능력을 믿지 못하거나 그분을 통해 이뤄진 사역이 아니라면 결국 자신이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혜와 힘에 의지해 행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선교를 통해, 속죄의 죽음을 통해 온 지구상에 있는 인류가 구원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환상 가운데 봤다. 주님은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경배를 드리고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계 14:6)을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형태의 선교 방식을 택하셨다. 하나는 ‘케리그마(Kerygma)’로 유대인과 이방인 앞에서 선포하신 말씀증거의 활동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케리그마의 중심이 됐다. 다른 하나는 ‘디다케(Didache)’로 산상수훈처럼 대중을 상대로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케리그마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신약성경 여러 구절에서 보여주고 있다. 요한복음 서두에는 예수님을 말씀(Logos), 곧 창세 전부터 계신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창조의 빛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왔다.(요 1:9~12)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돼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결국 구약에서부터 말씀하시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이라고 봤다.

이 같은 사실은 히브리서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바울은 하나님과의 화목 제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거한다고 말한다.(골 1:19~20) 예수님은 단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구세주임과 동시에 종으로 오셨다. 주님을 따르던 자들조차도 그를 메시아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고통당하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다.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인자’(人子, son of man)는 고난의 종이 돼야 했고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예수님 자신을 구원자라고 선포하신 것은 선교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 된 인간 스스로가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길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요 14:6)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신학이나 선교는 성경에 비춰볼 때, 바른길을 찾아갈 수 없다. 왜 그리고 무엇때문에 믿는 자들이 선교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명확성이 없는 선교는 의미도, 목적도 찾을 수 없다.

정흥호 아신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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