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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오하라 (6) 경기수련원 입학… 시각장애인으로 첫발 내딛다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실명하게 된 각양각색 중도 시각장애인들 모여 동병상련 아픔 나누며 서로 용기 줘

중도 실명한 가수 오하라씨가 전북 임실의 한 노인회관에서 안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안 보이면 어때. 못났으면 어때. 그래도 난 나를 사랑할 거야.’

이렇게 거듭 다짐했다. 이후 처음 한 일은 재활교육을 받은 일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출발이자 도전이었다. 경기도 수원 경기수련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보행, 점자 등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여러 과목을 배웠다. 현실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인은 정부에서 독점으로 허가한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 생계를 꾸려간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활학교에서 2년간 교육받으며 4번의 필기시험과 4번의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도 실명자는 더 힘들고 어려웠다. 갑자기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점자책을 읽거나 음성녹음이 된 책을 들으며 공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점자는 한글을 1부터 6까지의 숫자를 조합해 글자를 만든 것인데 그 숫자를 하나하나 외우는 것이 어려웠다. 좁은 틀 속에 점을 찍어 넣는 것도 뭐 하나 쉬운 것이라곤 없었다.

게다가 써놓은 점자를 뒤집어 손으로 더듬어 읽어내는 것은 당시 내 생각으론 인간이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점자라는 게 점 하나만 살짝 잘못 찍어도 ‘선생님’이라는 글자가 순식간에 ‘선생 놈’이라고 바뀔 수 있었다. 식사시간에 반찬을 집으려고 한다는 게 앞사람의 밥을 퍼오거나 국을 휘젓기 일쑤였다.

한 번은 남자 화장실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제법 화장실 구조를 잘 안다고 자부하던 한 시각장애인 학생이 다른 시각장애인 학생의 옷에 그만 실례를 한 것이다. 여기쯤이면 소변기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볼일을 본 것이 실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수강생들은 다들 얼마나 황당해 했는지 모른다. 시각장애인들은 부딪히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차바퀴에 발이 깔리고 잘못 거리를 다니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그 정도는 그저 좀 짜증 나는 일에 불과했다.

특히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실명하게 된 중도 시각장애인들은 성별도 나이도 개인적인 시각장애의 차이도 다양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리 더듬고 저리 부딪히며 생활하니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그래도 우리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알고 있었기에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며 각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화장실에 혼자 못 가는 학생들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약시인 분들이 도왔다. 사물함에 열쇠 구멍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학생에게 더듬어 찾는 요령을 알려주며 서로서로 의지했다. 시험을 앞두고는 학업이 부진한 학생을 위해 방과 후 따로 남아 시험 준비를 도와주며 어떻게든 함께 시험에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았다.

그만큼 시각장애인들은 절박했다. 그들에게 안마사 자격증은 가히 생명줄이었다. 단순한 수강생들이 아닌,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심정이었다. 서로 용기를 주고 희망을 나눴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기수는 학기 초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나는 영광스럽게도 안마를 가장 잘하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안마수기상’을 받았다. 졸업식 날 우리는 모두 당당했다. 할렐루야.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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