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듣고 싶은 말, 들어야 할 말

디모데후서 4장 3~4절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의사로부터 보통 이런 말을 듣길 원합니다.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이대로 쭉 관리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의사는 우리의 바람대로 말하지 않고 환자의 상태를 그대로 말합니다. “폐가 매우 좋지 않군요. 흡연 중이시라면 속히 끊으셔야 합니다.”

간혹 환자의 병이 깊어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환자가 충격받지 않도록 보호자에게 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이 위중한데도 환자가 싫어할까봐 이를 숨긴다면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있습니다. 명의는 환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바로 처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어떨까요. 믿는 사람 모두는 사실 영적인 환자들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흠 없다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고쳐야 할 점이 많습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은, 원래 죄인들인 셈이죠.

그런데 말씀을 듣는 자세는 의사를 찾아가는 환자와 사뭇 다릅니다. 우리 자신의 형편을 그대로 일러주는 말씀보다 가려운 귀를 긁어주고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며,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말씀을 더 좋아합니다. 기분 좋으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병명을 듣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데도 말이죠.

아합왕이 죽은 이유는 길르앗라못을 치도록 독려하는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합왕이 그곳을 회복하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 22:6) 아첨하는 말을 한 겁니다.

유일하게 바른말을 했던 미가야 선지자는 “가면 죽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시됐습니다. 심지어 정직했던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히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찾아간다면 사욕만 추종하는 스승을 두는 것이며, 영적인 병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병 때문에 망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를 경고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고린도전서 14장 23~24절에는 예언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바로 예언이란 우리의 앞날을 점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형편을 우리에게 알리는 말씀이라고 증거하고 있죠. “오늘 목사님이 꼭 내 말만 하시는 것 같아요. 혹시 당신이 목사님을 찾아갔어요?”라고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목사님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당신의 형편을 알고 전달자를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예레미야 6장 10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9)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가 한 일들을 모두 우리에게 알리고 보여주십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거나 성경을 읽다가 그 말씀이 당신의 행한 일이나 행할 일을 말해준다면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겁니다. 은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마땅히 들어야 할 말씀을 들었을 때’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대가 어두울수록 더욱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참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강성률 목사(서울 신촌예배당)

◇신촌예배당은 안병모 목사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세상을 떠난 안 목사의 뒤를 이어 강성률 목사가 신앙의 공동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청교도 정신과 말씀 중심,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온 성도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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