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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헌물 안에는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 ‘사례비 값은 했는가’ 매일 자문

<21·끝> 삯꾼이 되지 않으려고

당진동일교회 성도들이 지난 5월 5일 충남 당진 수청로 교회 예배당에서 열린 주일예배에서 찬양하고 있다.

목사에게는 무서운 경계선이 있다. 삯꾼이냐 목자냐 하는 선이다. 예수님이 정해놓으신 삯꾼과 목자의 선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있다.(요 10:11~12)

한동안 교회에서 사례금 받는 문제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도들은 얻은 소산을 헌금으로 드리는데 내가 그것을 챙겨간다는 게 영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심정은 비슷하다. 그래서 하루하루 나의 가치를 고민하며 산다. 퇴근 시간에 업무일지를 기록하고 문을 나설 때 ‘사례비 값은 했는가’하며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보내고 당연한 것처럼 돈을 챙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적질이다.

헌물 안에는 하루하루 고단한 삶이 담겨 있다. 기도와 눈물이 담겨 있다. 그래서 헌금을 다루는 것이 정말 무섭다. 지난달 지방도를 따라 당진으로 올라올 때 일이다. LPG 연료를 사용하는 작은 트럭이 앞에 보였다. 왠지 약간씩 흔들거렸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곁에 있던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앞서가는 저 차량은 분명 창문을 열고 운전하고 있을 거요. 아마 에어컨을 끈 채 창문을 열고 가는 차량 같소. 저분에게는 단돈 1000원이 무서운 일일 것 같네요.”

속도를 올려 작은 트럭 옆으로 다가갔다. 과연 그랬다. 들이치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힘겹게 달려가는 운전자가 보였다. 그의 고단한 얼굴이 가슴으로 밀려왔다.

우리 성도 가운데도 하루하루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 때문에 아끼고 아낀 물질을 헌금 봉투에 넣고 예배당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물질에 대한 정직함과 양심이 무뎌지면 결국 삯꾼이 된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이웃에 대해서는 풍성할수록 복된 일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무엘은 그의 사명을 마치며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자신의 삶을 점검했다. 첫째는 물질관이었다. 물질에 부당함이 없고 뇌물에 눈이 흐려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삼상 12:3)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양떼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았다.(삼상 12:23) 이것이야말로 진짜 목자의 양심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전도문이 막히는 문제의 원인은 교회 밖에 있지 않다. 교회 안의 문제다. 목자의 양심이 살아있는 만큼 건강한 교회가 된다. 그런 생각에 가혹하리만큼 말씀으로 비추며 엄격하게 살아왔다. 혹여 하나님 영광을 가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심방을 하루에 27~30가구씩 돌았다. 밤늦게까지 심방 말씀을 준비하고 새벽기도회 때 수십 가구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기도했다. 집중심방 때 동행하는 사람을 앞서 보내고 그다음 가정을 준비시켰다.

하루는 오후 4시쯤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5층 빌라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숨이 턱 막혀왔다. 꼭대기 층이라 얼마나 더운지 사우나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5층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사장 안전모가 가득했다. 손질하고 있던 성도에게 물었다. “이거 뭐예요?” “안전모 손질하는 부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후다닥 치웠다. “괜찮습니다”하고는 예배를 드렸다, 곁에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가방을 뒤적여 보니 20만원이 있었다.

“아들아, 아껴 쓰거라.” 그런데 순간 충격적인 말을 그 아이에게서 들었다. “목사님, 이걸 가지면 3년은 쓰겠네요.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 아이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돈을 보면 그 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아빠는 집을 나갔고 삼남매를 맡아 기르며 병든 그 엄마는 그렇게 인생의 짐을 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집에서 나와 모퉁이를 돌아가면 토스트 가게가 있었다. 한낮에 불이 꺼져 있었다. 혹시나 하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철판 앞에 성도가 서 있었다. 열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선풍기 하나 돌리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아무리 물어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차 싶어 냉장고를 열어봤다. 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달걀과 식빵만 있으면 되는 장사인데 그마저도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즉시 가게에서 나와 달걀과 식빵을 한가득 샀다. 그걸 건네고 돌아오는데 하늘이 하얗게 보였다.

목사는 성도들의 삶에서 겪는 목마름과 쓴맛을 잘 모른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느끼고자 새벽 4시 10분에 일어나 밤 11시에 퇴근했다. 지친 마음으로 달려오는 성도들에게 허망한 예배로 실망시켜 드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다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했다. 내 잘난 맛에 목회를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으려고 몸부림쳤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도군사학교’를 통해 당진동일교회의 전도 이야기를 나눴다. 전도는 공감이다. ‘세상 사람 다 몰라도 우리 목사님만큼은 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성도들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여, 아픔을 같이하고 고통을 같이 짊어지려고 힘을 다하자. 그때 성도들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인생을 드리고 기쁘게 봉사하고 감사하며 사는 눈물겨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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