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공장에서 소방관 둘이 다툰다. 오래 동고동락해온 끈끈한 사이지만, 한 명이 어떤 불의에 분노하다 방화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때 무언가가 폭발하면서 방화범이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그는 난간에 힘겹게 매달리며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동료에게 그만 놓아 달라 한다. 하지만 동료는 “You go, We go(네가 가면 우리도 가는 거다)”라고 말하며 같이 추락한다. 미국 영화 ‘분노의 역류’(1991년)의 한 장면이다. “유 고, 위 고”는 감동적인 명대사로 회자됐다. 전우나 다름없는 동료의 잘못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를 이해하고 그를 버릴 수도 없으니 함께 죽음으로 뛰어든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난리통 속에서 이 장면, 이 대사가 생각났다. 뭐가 자꾸 터져서 정신없는 화재 현장이 현 시국과 비슷하고, 큰 허물이 드러난 동지를 홀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지극한 동지애와 의리도 지금 곳곳에서 보인다. 현재 여권의 핵심에 있거나 여권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일수록 만신창이가 된 조 후보자를 향해 “유 고, 위 고”를 외치는 것 같다.

그러나 저 의리가 감동적이지는 않다. 조 후보자를 감싸는 말과 논리가 납득이 안 가기 때문이다. ‘모든 의혹은 헛소리다. 결격 사유는 전혀 없다’는 주장은 사실을 외면하는 선동이다. ‘흠결이 있지만 검찰 개혁의 적임자이니 임명해야 한다’는 말도 공감하기 어렵다. 수장에게 심각한 흠결이 있으면 개혁하기 어려울 것 아닌가. 더 깨끗하고 강력한 인물을 내세우면 될 일이다.

‘조국 지키기’에 나선 사람들은 보수 진영뿐 아니라 언론, 검찰과도 싸우고 있다. 이들은 “언론의 의혹 보도가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고 한다.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들이 임명 저지에 필사적인 걸 보니 저들이 뭔가를 지키려고 저러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조국을 지켜야겠다”는 다짐도 많다. 세상을 선과 악,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는 이분법이고, 배후의 어떤 음습한 세력이 사회를 조종한다고 보는 음모론적 세계관이다. 이분법과 음모론은 세상을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조 후보자는 현 정권의 아이콘으로 전부터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다. 그런 그에게 흠집이 생겼고, 흠집 중 하나가 발화성 높은 ‘자식 교육 문제’였으니 언론은 달려들 수밖에 없다. 달려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다. 의혹 보도에 가장 소극적이던 한겨레신문에서는 지난 6일 주니어 기자 31명이 국장단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자사가 조 후보자 의혹에 침묵한 것을 ‘보도 참사’로 규정하며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했다.

영화 ‘분노의 역류’의 원제는 ‘백드래프트(Backdraft)’다. 백드래프트는 밀폐된 공간에서 불이 났을 때 산소가 다 소모되면 불꽃 없이 연기만 나다가 외부에서 갑자기 산소가 들어오는 순간 폭발하듯 불길이 번지는 현상이다. 지금 여권이 맞고 있는 상황이 백드래프트와 비슷해 보인다.

기존 보수 세력보다 ‘더 도덕적이고 정의롭다’는 이미지로 정권을 잡은 세력이 조국 사태를 맞아 도덕과 가치의 파탄을 겪고 있다. “저쪽이 더 더럽고 문제다”라는 반격은 지금 힘을 얻을 수 없다. 조국 의혹 수사를 두고 검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펄펄 뛰며 ‘검찰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지 모르겠다. 정권이 하려는 개혁이 그냥 검찰을 틀어쥐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영화화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년)에서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좌파 주인공은 철교 폭파 임무를 완수하고 빠져나가던 중 파시스트의 공격을 받아 다리가 부러진다. 그는 연인에게 “If you go, I go too(네가 가면 나도 가는 거야)”라며 빨리 가라고 한다. 연인과 동지들을 살리려고 혼자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런 길도 있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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