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폭풍’으로 번역할 수 있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1991년 세바스찬 융거가 쓴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하다. 융거는 실제 발생했던 허리케인 그레이스가 다른 두 개의 기상전선과 합쳐져 유례없는 대형 태풍이 만들어진 상황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했다.

지난 한 달간 장관 후보자 한 명의 적부 여부를 놓고 국가의 모든 역량을 소모하는 사이 한국 안보와 대외관계에 근간을 이루어온 한·미동맹이 퍼펙트 스톰으로 들어갈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 시작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종료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미국 정부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한·미동맹 전선에 이상기류가 확인된 상태에서 잘못하면 퍼펙트 스톰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위비 분담 협상을 앞두고 있다. 태풍의 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1945년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안보의 공공재를 제공해 왔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동맹국과 우호국에 거칠게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일에도 “한국과 일본 등을 돕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미국을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정확한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48억 달러를 한·미동맹 관련 미국의 총지출 비용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회계연도 2018년 미국이 밝힌 주한미군 인건비를 포함한 총 주둔비용은 35억 달러이다. 따라서 48억 달러는 미군 인건비를 포함해 지난 10차 협상 때 요구했던 전략자산 배치 비용, 연합훈련 비용 등 ‘작전지원항목’을 확대 적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미국은 현 협정에 포함된 ‘역외군수지원’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항목은 필요시 한반도에 전개될 수 있는 전력의 유지, 정비, 보수비용 등을 포함한다. 역외군수지원을 위한 이행약정은 2009년부터 체결되어 한국이 매년 평균 190억원 정도 부담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방어에 직접 연계되지는 않으나 한국의 중요 안보 이해가 달린 사안, 예를 들면 호르무즈 해협과 남중국해 해상 교통로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활용 등을 위해 미국이 감당하고 있는 비용 등도 포함해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 한국은 1987∼88년 페르시아만 사태, 이란-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미국의 함정 파견을 지원하는 ‘역외 방위분담’을 시행한 바 있다.

미국이 상정한 48억 달러는 위와 같은 비용을 모두 망라한 것으로서 기존의 방위비 분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한국과 미국은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체결해 한국이 주한미군에게 토지와 시설을 제공하는 반면 미국은 모든 주둔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한국의 국력이 향상되면서 SOFA의 예외조항으로 특별협정(SMA)을 맺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러한 틀을 깨고 더 이상 주둔비용에 근거한 방위비 분담이 아닌 ‘동맹 기여금’을 받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48억 달러 중 얼마를 한국에 요구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0차 협정 때 한·미가 8.2% 증가한 1조389억원에 합의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높은 액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몽니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북핵문제를 미국에 더 의존해야 하는 처지, 한·일 갈등으로 미국의 중재 역할이 더 절실한 환경, 지소미아 파기로 야기된 한·미 갈등 등의 상황으로 한국의 협상 입지는 좁다. 방위비 분담 협상에 민감한 국내 여론을 감안할 때 트럼프의 거친 요구는 한국 내 반미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훈련을 “돈 낭비”라고 폄하하는 트럼프가 한국의 적절한 비용 분담이 없을 경우 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이 퍼펙트 스톰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선을 좁혀야 한다. 비난만을 일삼는 북한에 매달리지 말고 한·일 갈등도 조속히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인 후 트럼프의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박원곤(한동대 교수·국제어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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