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싱가포르에서 95세로 사망한 로버트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독립투사 출신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로디지아를 1980년 흑인들의 독립국가 짐바브웨로 재건한 ‘국부’였다. 집권 초기 그는 인종 화합을 선언하고 빈곤층이던 흑인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체제를 개혁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무가베 통치의 끝은 경제 실정과 독재정치였다. 엄격한 환율과 물가 통제 정책을 펴다 기네스북 기록감인 초인플레이션을 자초해 경제를 파탄 냈다. 2008년엔 7개월간 물가상승률이 2억3000만%나 됐고, 100조짜리 짐바브웨달러 지폐를 발행해야 했다. 집권 연장을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정부 인사와 국민을 탄압하고 수만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무가베의 실정 뒤에는 부인 그레이스의 탐욕이 있었다. 1965년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이스는 80년대 후반 무가베 대통령의 개인비서로 일하다 불륜관계를 맺어 2명의 아이를 낳았다. 서방 언론은 그녀를 ‘구찌’ 그레이스라고 불렀다. 명품 쇼핑을 즐겨 2003년 파리 여행 때는 잠깐 동안 1억원어치를 샀고 2014년 딸 결혼식에는 무려 51억원 이상을 썼다. 국민들은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수레 한가득 지폐를 싣고 가야 했지만, 영부인은 빵 한 수레로도 살 수 없는 외제 명품 쇼핑에 열을 올렸다. 그녀의 탐욕은 무가베의 37년 세계 최장기 통치를 끝내는 방아쇠를 당겼다. ‘부부 세습’을 시도하려 2017년 2인자이던 에머슨 음낭가과 현 대통령을 전격 해임했다가 쿠데타가 일어나 싱가포르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레이스의 사치 행각은 이멜다 마르코스를 떠올리게 한다. 미스 필리핀 출신인 그녀는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21년간 통치하는 동안 권력과 재력을 향유했다. 마르코스가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으로 축출됐을 당시 대통령궁에서는 최고급 구두 3000켤레와 가격표도 떼지 않은 구찌, 루이비통 핸드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짐바브웨 정부는 무가베가 축출된 뒤에도 면책특권을 보장했고 심지어 무가베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무가베 시신도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화해 정치다. 이런 특권이 그레이스에게도 허용된다면 하원의원으로 재기했던 이멜다와 유사한 길을 밟게 될 것이다. 그의 복귀는 100조 지폐만큼이나 세계의 이목을 끌 것이 틀림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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