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바쁜 인생이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관조하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부족하고 개선해야 할 분야가 있다. 바로 ‘보행자가 보호받는 교통문화’다. 한 나라가 선진국임을 알려주는 여러 지표가 있다. 국민소득, 경제, 문화 등이 그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은 1조6000억 달러로 세계 12위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000달러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인데 교통문화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OECD 35개 회원국에서 다섯 번째로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다. 그중에서도 보행자 안전이 가장 취약하다. 지난해 보행 사망자 비중은 OECD 회원국 평균인 19.7%보다 2배나 높은 39.9%다. 운전하면서 사망하는 사람(1341명)보다 걸어가다가 사망하는 사람(1487명)이 더 많다. 당장 가까운 횡단보도로 나가보자. 보행자를 봐도 멈추지 않는 차를 쉽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사람이 차를 피해 걸어가야 한다. 왜 차는 사람을 보고 멈추지 않는가. 과거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사람보다 차가 먼저 갈 수 있도록 소통 위주로 교통정책을 펼쳤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물류를 우선했고, 신호연동제, 점멸신호등과 같이 차량을 먼저 보내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교통문화에 관한 외국인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중에서 ‘왜 한국에서는 사람이 차를 보면 멈춰야 하고 오히려 차는 사람을 보면 멈추지 않는가’라는 지적에 경찰관으로서 뼈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도 캐나다에서 파견근무하는 동안 사람 중심, 특히 보행자 중심으로 정착된 교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걷든 차는 무조건 사람이 보이면 섰다. 경적도 울리지 않았다. 캐나다를 포함한 선진국에선 사람 중심의 교통문화가 확립돼 있다. 경남경찰청에서는 지난 7월부터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보행자 보호 교통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운전자 인식을 개선해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표다. 보행자가 보호받는 교통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진정무 경남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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