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다. 필자는 신남방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종종 이 시를 인용한다. 문재인정부가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정책에 신남방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과 같다는 뜻이다.

문재인정부 이전 한국의 대(對)아세안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세안이 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했던 만큼 나름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름이 붙은 것은 처음이다. 이름이 붙게 되면 정책적 의지와 관심이 따라온다. 임기 내 꾸준히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책 추진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기도 수월하다.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이 커진다. 이 모든 것이 정책 추진에 있어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문재인정부 2년 반 동안 신남방정책은 작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숫자로 보이는 증가, 성장, 심화 등의 지표들은 많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한반도 상황의 급진전,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 등 아세안에 대한 관심과 정책 자원을 빼앗아갈 수 있는 변수들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전 정부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개의 경우 반짝 정책에 그친 경우가 많다. 실무선에서는 아세안과 관계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입했지만, 최고 정책결정자층의 정책 의지는 지속되기 어려웠다. 한반도 상황, 한·미 관계, 한·중 관계 등 흔히 더 급박하다고 여겨지는 외교 사안에 떠밀려 아세안에 대한 관심과 정책은 표류하곤 했다. 아세안 국가들이 한국의 대아세안 외교에 대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도 이런 정책의 연속성과 지속 가능성이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태국, 미얀마, 라오스 순방에 이어 11월에는 부산에서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제3차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2년을 넘기고 3년 차에 들어선다. 문재인정부의 임기도 대략 반환점을 돌게 된다. 신남방정책을 총괄하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이제 신남방정책 2기 혹은 신남방정책 2.0을 준비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향후 신남방정책 추진을 위한 대내외적 과제를 짚어볼 시점이다. 대외적으로 정책 메시지가 중요하다. 외교도 심리다. 상대방의 인식이 외교적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와 계획을 갖고 있다 해도 상대방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오해한다면 정책은 실패한다.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외교부, 여러 유관 부처들을 중심으로 많은 구체적인 정책들이 준비되고 있다. 꾸준한 정책은 물론 중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동남아 국가들에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 관심이 꾸준히 지속된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국내적으로 정책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문재인정부 신남방정책의 성과 중 하나는 제도화다.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설치, 외교부 아세안국 신설, 주아세안 대표 강화 등이 그 예다. 이런 정책 추진을 위한 제도 강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현 정부 내에서, 나아가 다음 정부에서도 아세안 정책이 꾸준하고 건실하게 추진되려면 제도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꾸준한 정책 추진을 위해 아세안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 외교정책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한국의 안보, 경제, 사회문화적 이익에 아세안이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이 인식할 때 이런 지지가 확보되고 정책도 탄력을 받는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외교로 생존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도 중요하지만 아세안처럼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외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또 한국의 국력이 커질수록 상대해야 하는 지역과 국가도 더 많아진다. 지역과 국가들에 대한 지식, 통찰력 없이 이 지역들과 국가들에 대한 외교는 불가능하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시장과 대학이 아직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노무현정부 말기에 잠시 논의되었던 지역 연구에 관한 국가기관인 국립지역원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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