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이 운영하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 한 북한음식전문점이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9일 음식 준비로 분주하다. 탈북민들은 명절에 이 음식점을 찾아 쓸쓸함을 달랜다고 한다.

“탈북민이 명절에 어디 갈 데 있갔습니까. 일이나 해야지.”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9일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북한음식전문점. 9년 전 탈북해 이곳에 정착했다는 식당 주인 이모(42)씨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이씨는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이 지역 탈북민들이 추석 때 올 만한 곳은 여기 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고향 음식이 더 생각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난 2003년 탈북민 30여명 입주를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꾸준히 정착이 이뤄지고 있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을 찾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동구에는 지난달 기준 탈북민 2000여명이 거주한다. 단일 지역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탈북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추석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지만 탈북민이 많이 거주하는 논현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명절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맘때 바쁘게 추석 선물을 배달하는 택배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이 모여 있어야 할 놀이터는 텅 비어있었다. 아파트 내 국공립 어린이집 앞에 걸린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적힌 현수막만이 명절을 앞둔 시점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23년 전 탈북했다는 한 여성은 아파트 상가에서 만난 기자에게 “이번 추석에도 그냥 집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민이 많이 거주하는 논현동의 한 아파트(위 사진)와 이곳 놀이터는 택배차량은 커녕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아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명절에 찾을 만한 곳이라고는 사실상 북한음식전문점 뿐이다. 이씨는 “설날이나 추석이면 북한 동포들이 확실히 많이 온다”고 말했다. 다른 북한음식점의 탈북민 출신 사장 A씨(50)도 “명절에 갈 곳 없는 탈북민들이 북한 술안주로 유명한 짝태와 술을 먹으며 쓸쓸함을 달랜다”고 했다. 그는 “우리 동포 손님이 온다고 하면 새벽 1시라도 문을 연다”며 “고향 음식 먹겠다고 대구에서까지 올라오는 탈북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명절에 실향민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9년 전 북한에서 탈출해 이씨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변모(57)씨는 “남한에서 살고 싶어서 이곳에 왔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못 봐서 힘들다”며 “북한에 계신 부모님들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아계실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A씨도 “한 동네에 살던 친구들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정말 크다”고 말했다. 10살 때 북한에서 탈출해 인천에서 대학을 다니는 호모(20)씨는 “연세가 많으신 탈북민 중 향수병을 겪고 계신 분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지난 2017년 발표된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탈북민 다문화가족 이민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는 건 ‘외로움’이 34.9%로 2위에 올랐다. 해당 조사에서 1위는 ‘언어문제(39.8%)’였고, 3위는 ‘자녀양육 및 교육(24.4%)’이었다.

이날 만난 탈북민들은 차별도 여전히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변씨는 “남한 사람들 중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며 “북한 동포들은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최근 남한 손님과의 해프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빌려준 라이터를 돌려주지 않기에 달라고 했더니 ‘하여튼 북한 놈들이란’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호씨는 “오히려 북한 동포들이 남한 사람들을 지레 경계하고 탈북민끼리만 지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한 사람들도 탈북민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아파트 주민 김모(40)씨는 “아파트 단지에 탈북민은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이야기는 한 번도 제대로 나눠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5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했다는 공모(70)씨는 “어감이 세고 목소리가 큰 탈북민들과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서울 관악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탈북민 모자 사건에 대한 탈북민들의 의견은 갈렸다. 변씨는 “동사무소나 교회에만 가도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는데 왜 굶어죽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씨는 “남한에서 복지지원을 받는 과정이 탈북민에게는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A씨는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죽음도 하늘이 정한 운명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올해 추석에는 탈북민 관련 단체들의 명절 행사도 지난해보다 훨씬 적게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이번 추석 맞이 행사로 계획하고 있는 별도 프로그램이 없다고 밝혔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은 “최근 개인이든 기업이든 탈북민 단체들에 대한 재정 지원이 ‘제로’에 가까워서 명절 행사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우리 단체도 올해 따로 진행하는 이벤트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천 하나센터는 추석 연휴 기간 이 탈북민 200여명을 대상으로 송편 만들기와 단체 공연 관람 등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글·사진=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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