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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악마는 어디에…


캐나다 그것도 서부 밴쿠버 인근의 소도시에서 겨우 1년을 지내다 왔다고 이렇니 저렇니 떠드는 건 민망한 일이다. 그래도 회사와 함께 공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다녀왔으니 1년간 공부하고 정리한 바를 간단하게라도 독자들과 나눠야 할 것 같다.

내가 적을 둔 곳은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의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이었다. 연수 주제는 종교와 과학의 대화, 구체적으로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공존하면서 서로 긍정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창조론을 신봉하느냐, 진화론을 믿느냐 두 입장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향해 “네가 틀렸다”고 손가락질해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던 때에도 그랬다. 천동설을 부인하면 교회가 무너질 것처럼 여겼다. 지금은? 지동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교회는 무너졌나? 매주 전 세계의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교황 우르바노 8세가 갈릴레이를 재판에 회부하던 1633년보다 훨씬 많다. 지동설과 교회는 사이좋게 공존한다. 창조론과 진화론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진화론자들 중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이른바 신(新)무신론자들이 교회와 기독교 신앙을 허구라고 공격하면서 공존 가능성을 일축한다. 반대쪽에선 창세기 1장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고자 하는 창조과학론자들 역시 진화론은 허구이고 공산주의 사상까지 만들어냈다고 공격한다. 이들만 보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은 창조과학론과 신무신론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분자생물물리학 박사이면서 세계적인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자연과학의 연구방법론을 신학에 적용하는 ‘과학적 신학’으로 대화의 통로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를 향한 비종교인의 비판은 겸허하게 경청해야 하지만, 신무신론자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탄테러나 양심적인 종교인들의 봉사활동을 똑같이 위험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또 다른 근본주의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VIEW의 설립자인 양승훈 교수도 물리학 박사이면서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다. 그는 창조과학론이 주장하는 젊은 지구론(지구의 나이가 6000년 안팎이라는 이론)을 비판하고, 과학계에서 말하는 지구(45억년)와 우주(138억년)의 나이를 인정한다. 대신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대격변을 창세기 1장에 비추어 설명하는 다중격변창조론을 주장한다. 양 교수는 “창조 연대가 오래됐을 수 있다는 주장은 복음주의 진영의 구약학자 대부분이 지지하고 있는 성경 해석”이라면서 “젊은 지구론은 성경적이고 오랜 창조 연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자유주의자라거나 진화론과 타협한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는 과학적 탐구의 결과로 관찰되는 진화와 무신론적 이데올로기가 된 진화주의를 구분하고, “진화주의는 진화라는 자연현상을 보는 하나의 철학적 관점이고 진화를 하나님이 다양한 생물종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보는 유신론적 해석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과학과 종교가 공존할 길을 찾는 다양한 논의를 힘겹게 따라가다 문득, 왜 과학과 종교가 서로를 이단(異端)처럼 여기기 시작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광활한 밤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는 우종학 교수의 고백이나, 매년 캐나다 로키를 탐사하며 창조의 역사를 더듬어가는 양승훈 교수에게 두 영역은 배타적이지 않은데 말이다. 과학이 탐구하는 진리도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섭리다. 천동설처럼 교회가 하나님의 뜻으로 믿었던 것이 어쩌면 인간의 착각이었을 수 있다. 반대로 과학도 신을 관찰할 수 없으니 인정할 수 없다고만 할 게 아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시대에 인간과 생명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오래된 지혜인 종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서 ‘내가 아는 진리만이 진리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은 몰아내야 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야말로 우리가 배척해야 할 악마의 목소리일지 모른다.

김지방 미션영상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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