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오랜 기간 스파이로 활용해온 러시아 정부 고위관리를 2017년에 철수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밀정보를 부적절하게 취급하면서 스파이 신분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는 것이다.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미 언론들의 보도 경쟁이 치열해진 게 원인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스파이는 현재 미 정부 보호를 받으며 워싱턴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NN방송은 9일(현지시간) 미 정부가 러시아 정부 내 고위 스파이를 빼오기 위한 비밀작전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복수의 트럼프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관리들이 비밀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던 것이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5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세르게이 키슬약 주미 러시아대사와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와 시리아 내전 관련 고급 기밀정보를 러시아 인사들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정보는 이스라엘 정부가 제공한 것으로 러시아 정부 내 스파이와는 무관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정보 당국자들 사이에서 스파이 신분 노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CIA는 이 스파이가 중견 간부였던 시절 포섭해 세심하게 관리해 왔다. 그는 이례적으로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러시아 권력의 심장부인 크렘린궁까지 입성했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스파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이너 서클’에 들지는 못했지만 푸틴 대통령과 주기적으로 접견하고 의사결정 절차에도 관여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CNN은 스파이가 푸틴 대통령 책상 위에 놓인 서류의 사진을 찍어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스파이를 빼내온 데는 미 언론들의 취재 경쟁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부터 불거졌던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스파이의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스파이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이메일 해킹 등 공작을 직접 지시했다고 CIA가 결론짓는 데 공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즈음부터 미 언론은 크렘린궁 내 CIA 정보원의 존재를 눈치 채고 조금씩 관련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CIA는 2016년 말 스파이에게 탈출을 권유했다고 NYT는 전했다. 하지만 스파이는 가족을 이유로 들어 제안을 거부했다. 때문에 CIA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가 러시아 정부에 포섭돼 이중 스파이가 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CIA는 이 스파이의 존재를 암시하는 언론 보도가 계속되자 이듬해 재차 탈출을 촉구해 승낙을 얻어냈다고 한다. NBC방송은 스파이가 자신의 본명을 유지한 채 워싱턴에 거주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 정보 당국은 스파이를 빼내온 이후 러시아 핵심부의 정보를 얻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전직 KGB 스파이로서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러시아의 개입을 막는 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