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남쪽에는 한국이 관리하는 하늘길인데도 중국과 일본이 통제하는 하늘길이 있다. 과거 중국과 한국의 외교 관계가 단절돼 있어 항공 관제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관제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재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항공교통량이 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불거졌다. 수시로 항공기가 지나다니다보니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중국과 일본에 하늘길 재정비를 요청했다. 국제사회의 공감대도 얻어 한국이 통제하는 항로를 새로 개설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악화된 한·일 관계의 불똥이 항공안전 분야로도 튀면서 추후 ‘한·일 갈등’의 또 다른 축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제주남단 항공회랑’은 중국 상하이 동쪽 해상 아카라 지점에서 제주도 남쪽 한국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해 일본 후쿠에섬을 연결하는 길이 519㎞, 폭 93㎞ 구역이다. 항공회랑이란 항공기가 특정 시간대에 특정 높이로 날아가는 일종의 길을 뜻한다. 항로와는 달리 항공회랑에서는 정해진 고도를 바꿀 수 없다.

제주남단 항공회랑 중 259㎞에 해당하는 구역은 한국의 비행정보구역이다. 한국이 관제, 비행정보, 조난경보 등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구간의 관제 업무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나눠서 한다. 항공동경 125도를 기준으로 서쪽은 중국 상하이 관제소가, 동쪽은 일본 후쿠오카 관제소가 담당한다.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관제권이 중구난방으로 설정된 배경에는 1980년대 공산권과의 ‘외교 단절’이 있다. 1983년 중국~일본 직항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관제 교신이 불가능해 장애물로 등장했다. 이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관제권을 중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갖는다는 중재안을 내놓았었다. 83년 당시 한국의 국적 항공사는 대한항공밖에 없었고, 제주남단은 사용하지 않는 항로였다. 한국 정부는 중재안을 받아들여 관제 업무를 중국과 일본에 양도했었다.

그러나 이후 항공교통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도 관제 업무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서 위험성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 측이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구역은 한국에서 동남아시아로 가는 항로와 교차한다. 하루 평균 880대의 비행기가 오간다.

교통량은 많은데 관제 업무는 서로 다른 국가가 하면서 교신 장애에 따른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불거졌다. 지난 6월 30일 중국 길상항공과 동방항공 여객기가 공중에서 충돌할 뻔한 상황이 일어나 회피기동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페덱스 항공기가 무단으로 고도를 높여 한국의 저비용항공사 소속 여객기와 충돌한 뻔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 국제사회에서는 비행 안전을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지역으로 지정했다.

한국 정부는 심각성을 깨닫고 항공회랑 관제권을 재정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비행정보구역 내에서 우리가 관제할 수 있는 새로운 항공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중국과 ICAO가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실제 협상은 한·중·일 3국이 모여 진행해야 한다. 때마침 한·일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일본 측이 협상에 비협조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토부는 ICAO, 중국, 일본과 협의를 계속 진행하는 동시에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6일 후쿠오카 관제소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게 관제 업무를 제공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일본 항공 당국에 요청했다. 항공회랑 주변 공역에 대해 매해 1~2회 안전 평가를 실시하는 등 관리체계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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