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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살아생전, 절대 안정


“모든 사람은 꽃이다/ 감히 피어 본 꽃들이다/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고 있다/ 살아생전/ 절대 안정/ 절대로 절대 안정이다….”

일본 시인 사이토 마리코(薺藤眞理子)가 한국어로 쓴 시 ‘살아 계세요’의 앞부분이다. ‘살아생전 절대 안정’, 어느 병원 벽에 붙어있을 법한 이 용어로 시인은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고 마는 연약하고 유한한 우리네 인생을 그리고 있다. 이런저런 소란들로 어지러웠던 요 며칠, 이 글귀를 담아 지인들의 안부를 묻는다.

이어지는 시의 내용엔 길에 앉아 열심히 감을 먹고 있는 할머니들, 배달 가다 오토바이 사이드미러에 비친 얼굴을 보며 여드름 제거에 몰두하는 식당 아저씨,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열심히 팔굽혀펴기하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모두 절대 안정 기간에 유별난 몰두의 꽃들이다. 평범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이지만 뭔가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모습, 몰두의 가을을 그리고 있다. 거리에는 소란스러움이 가득하지만, 이 절대 안정만큼은 방해받지 못하도록 “살아 계세요. 몰두하면서/ 시끄럽게/ 신나게”라고 부탁한다.

시 안에서 ‘몰두’와 ‘절대 안정’이란 표현을 읽으며, 우리에게 허락된 일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절대 안정임을 깨닫는다. 절대 안정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생전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순간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뭔가에 몰두해 있는 시간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정적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매우 치열한 시끄러움이 그 안에 들어 있다. 나비의 날개 치는 소리가 자동차 경적 못지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절대 안정에는 그 격렬한 소음이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다.

소리와 소리로 버거운 시간이다. ‘조용히 지내자’고 혼자 잠재우는 말이 도리어 되살아나는 날, 여호수아서 6장을 읽고 묵상하다가 침묵과 외침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주겠다면서 모두 무장해 여리고 성을 돌게 했다. 처음 6일은 침묵 속에서 하루 한 번씩 성을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나서 큰소리로 외치라고 했다. 먼저는 침묵하고 그다음 외쳤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 이런 침묵은 아무런 효용이 없는 행위 같지만 실은 침묵에서부터 나아갈 빛이 보인다.

‘침묵의 세계’에서 막스 피카르트는 “현대의 우울은 인간의 말 대부분을 침묵과 분리함으로써 말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그의 다른 책 ‘인간과 말’에선 “침묵은 말에 속한다. 침묵은 어둠이 아니다. 침묵은 산란된 빛이다. 그것은 어떤 하나의 빛, 즉 말의 빛 속으로 수렴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6일 동안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않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성을 도는 동안, 깊은 어둠 속에서 이들의 외침은 더 크고 선명하게 길러지고 있었을 것이다.

견고한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게 한 외침은, 오랜 침묵 속에서 말씀의 빛으로 벼르고 벼른 날카롭고 선명한 새로운 언어였다. 소음을 이기기 위해 내는 더 큰 소리가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자들이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언어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하고 하나님이 주겠다고 한 약속의 말씀으로 빚어진 외침이었다. 온갖 거짓 소음과 저급한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다. 말씀을 묵상하는 이들은 어떤 소리를 내야 할까. 소리를 내기 전에 그 소리의 무서움과 위험을 알고 조용히 침묵에 잠기는 긴 시간을 견뎌야겠다. 그러고 나서 외치라 할 때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있는 힘껏 소리를 내야겠다.

살아생전 절대 안정 이 기간에, 절대 침묵을 배우면서 살아계시라. 무조건 아무 말 없이 참고 사는 것이 아니다. 가열차게 살며 운동력 있는 이 말씀, 복음의 언어에 몰두하면서 살자. 일곱째 날, 우리 입에서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김주련 대표(성서유니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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