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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9월 16일] 우리에게 새겨진 흔적


찬송 : ‘이 세상 험하고’ 263장(통 19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말씀 : 갈라디아서의 중심 메시지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바울은 할례 대신 십자가만 자랑하자고 했습니다.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유대적 유산에 자기 노력을 더한 결과 새롭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홀로 마주했던 아라비아 광야에서 뭔가 터득해 높은 경지에 올라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 번 선교 여행 속에서 교회를 개척했고, 역사에 남을 서신을 여러 차례 써서 하나님이 그의 공로를 인정해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믿음의 공동체로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놀랍게도 그리스도께서 못 박혔던 ‘십자가’ 덕분이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세상의 커다란 악과 최선을 다해도 만족이 없어 불안과 근심, 어둠 속으로 빠져들 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심지어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까지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십자가는 최고의 자랑거리입니다.

반면 할례는 눈에 보이는 옛 언약의 흔적일 뿐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만들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할례를 강요할수록 십자가는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율법을 다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강조하는 이들은 그것을 자랑했고 그래서 차별을 불러왔고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높아지는 길을 버리고 할례를 통해 자신이 최상이라는 걸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저들이 할례받는 일에 매달리는 만큼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상실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도덕적 이상과 책임을 추구하며 자신들이 걸어가는 길에 다른 이들을 참여시키려는 압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의 치명적인 약점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멀리하고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규칙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경계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새로 지으심 받는 것만이 중요합니다.(15절) 그 일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stigmata)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17절) 1세기 헬라 세계에서 ‘스티그마타’는 종들의 신분을 표시하던 낙인이었습니다. 당시 이교의 신에 속했다는 걸 나타내는 문신도 유행했습니다.

반면 예수의 손과 발에 새겨진 못과 옆구리의 창 자국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사랑의 스티크마타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몸과 마음의 상처들을 예수의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인정하고 공감할만한 흔적이었습니다. 복음에 죽도록 충성한 삶의 흔적과 자취들, 그보다 더 강렬한 사랑의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 8:36)

기도 :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세상 자랑거리에 매달리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로서 참된 자유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은호 목사(서울 옥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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