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국방부와 외교부는 물론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기한 연장’으로 흐르던 청와대 분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김 차장이었다. 김 차장이 22일 아침 문재인 대통령 관저를 찾아가 대통령을 설득했다는 얘기도 있다.

사전통보조차 받지 못한 미국은 격앙했다. 미국은 이후 외교부가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쓴소리를 하고,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데도 김 차장의 입김이 있었다고 본다. 최근 워싱턴을 다녀온 외교전문가와 미 싱크탱크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조야에서 김 차장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높다. 7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대담에 출현한 전 국무부 관리의 발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토머스 컨트리맨 전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대행은 “한국의 국가안보실 2차장이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적이고 충동적인 조치’를 국가안보를 위한 현명한 결정으로 포장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건 형편없는(poor) 외교, 형편없는 국가안보 결정”이라고 공격했다. 특히 미국 당국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건 “미국도 파기 결정을 이해했다”는 청와대의 발표라고 한다. 어떻게 핵심 동맹국이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 당국자들에게 김 차장은 ‘믿지 못할 사람’으로 각인됐다고 한다.

김 차장은 손꼽히는 통상전문가로 미국 변호사 출신이다. 통상 협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제로 섬(zero sum)’ 게임이다. 반면, 외교는 윈-윈을 지향한다. 특히 동맹 외교에서는 신뢰 구축과 유지가 기본 중 기본이다. 비판자들은 김 차장이 워싱턴의 생리를 잘 모르는 데다 게임의 규칙이 다른 무역 협상 경험을 외교 안보 분야에 적용하면서 국가안보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의용 안보실장도 11일 전격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통화조차 못 한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그 이유도 정 실장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과장하는 등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김 차장까지 기피하면 백악관과 청와대 간 외교·안보 창구가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통상전문가를 안보실 핵심으로 기용한 실험이 긍정적 효과를 내기보다는 부담이 되고 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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